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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Apr 26. 2024

파리지앵, 고려장

아들아, 네가 어떻게?

엄마의 첫 기일 다음 날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배낭여행이다. 딸 같은 작은아들이 동행했다. 파리의 치안에 대한 우려가 커 호텔은 안전하고 교통이 좋은 곳으로 예약했다. 새해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개선문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였다. 



이른 아침, 마치 파리지앵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호텔을 나와 돌아다니기 시작한 3일째. 

드디어 사건은 벌어졌다. 나는 동서남북 방향에 약하다. 길 찾기 지도를 보고 걸어도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확신에 차서 걷는다.                      

   



이른 아침 파리 16구 골목길



투어를 마치고 숙소인 16구에 있는 플로이드 에투알 호텔로 가는 길이었다. 개선문에서부터 샤이요거리를 흥분해서 구름에 떠가듯 무아지경으로 걷다가 보니 앞서가던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도착한 날 저녁부터 산책 나왔던 사요궁 앞이어서 겁날 것은 없었다. 



노상 카페에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길쭉길쭉하고 두상은 조막만 한 선남선녀들을 안 보는 척 훔쳐보며 자연스럽게 당황하지 않고 걸었다. 그런데 막상 큰길에서 연결된 골목길들이 무슨 복사를 한 듯이 비슷한 패턴에 건물도 비슷비슷해서 덜컥 불안감이 거세게 밀려왔다. 그제야 아들의 뒤통수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길을 잃고 초조하게 헤매는 모습을 결코 적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리라!’는 굳은 의지를 발걸음에 실었다. 자연스러운 종종걸음과 발끝 세우기를 번갈아 하며 한겨울 비슷한 외투를 입은 키 큰 남자들 사이에서 내가 낳은 키 큰 남자를 찾고 또 찾았다. 



2019/12/31 파리 개선문 불꽃놀이 가는 길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아들이 없다.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고 배도 살살 아파오려 하는 징조를 보니 멘붕 증상이다. 이제 아들에 대한 원망이 입밖으로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때 아들의 전화가 왔다. 화장실이 급해 빨리 숙소에 왔는데 왜 아직 안 오냐고 한다. 바로 코앞이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나고 묻는다. 

      


“모르겠다고! 어떻게 엄마를 버릴 수 있냐고! 이게 고려장이지 뭐니!”        

      

원망을 소리 죽여 내뱉고 그 자리에 서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라! 전화를 끊자마자 저쪽에서 아들이 튀어나온다. 길치의 종지부를 찍은 도시, 사랑하는 나의 파리! 





           

이른 아침 샤이요궁에서 바라본 에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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