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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Sep 17. 2022

선행학습보다 더 중요한 '경험'의 가치

2년 낙제생을 세계적인 명문대학에 보낸 성장 스토리를 연재합니다

이야기 2. 나는 아들을 이렇게 UC Berkeley에 보냈다


3개월의 ESL 과정이 끝나가며 여전히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은 한편으로 이 특별한 곳의 생활이 좋아져 필수 과정인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라는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싶어졌다. 훈련 방식이 학교마다 조금씩 달라 공연예술(Performing Art), 중국(China), 사진(Photogenic), 인권(Justice) 등 주제에 따라 영어나 이중언어(영어-한국어) 학교가 시작된다고 했다.


여전히 한국인 기피증이 있던 터라 용감하게도 영어로만 진행되는 학교를 선택했다. 그중에서도 이혼 과정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과연 '신은 정의로운가'에 대한 의구심으로 최종적으로 정의와 인권 이슈를 다루는 Justice DTS 과정을 지원하게 되었다.


ESL과는 강의뿐 아니라 대화 수준도 차원이 다른지라 절반 이상 못 알아듣는 데다가 워낙 내성적이어서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외국 학생들에 주눅 든 채로 존재감 없이 앉아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 인신매매, 매춘, 고아 등의 실태를 배우고 인권을 박탈당한 약자를 어떻게 도울지 토론하는 시간은 그동안 전혀 몰랐고 관심 밖에 두었던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구조적인 부조리함과 불공정함에 눈뜨는 계기가 되었다.


3개월의 강의 기간이 끝나갈 즈음 두 달여의 해외 아웃리치를 앞두고 조별로 흩어지게 될 국가를 정하는데, 하필 가장 후진국인 나이지리아로 결정되었다. 7살 아이를 데리고 한 달간 아프리카에서 살아야 한다니. 지난 6개월간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정신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이후의 아프리카 생활은 육체적 힘듦까지 더해진 고된 나날의 연속이 될 것이었다.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황열, A형/B형 간염 등 여러 예방주사를 맞고 2개월의 전도 여행 및 봉사활동을 떠났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생활하는 팀 여행이기에 오래 걸리더라도 저렴한 이동을 위해 나라 간 24시간씩 걸리는 건 흔한 일이었고 공항에서 노숙하기도 했다. 아들을 챙기며 세 개의 여행용 가방을 끌고 수없이 전철이나 버스를 갈아타거나 한 시간씩 걸으며 일정이 진행되었다.


처음 영국에서의 아웃리치 단체교육 이후 도착한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는 20여 년간의 인종과 종교적 갈등으로 내전의 아픔을 가진 나라여서인지 삭막하고 우울한 느낌을 곳곳의 도시 분위기와 사람들 표정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한 달간 데이케어 센터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교회에서 주일학교 사역을 하는 등 곳곳이 유혈 분쟁 끝 폐허처럼 남아있는 지역에서 동족 간 전쟁으로 상처가 큰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사랑과 돌봄을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 모든 순간에 아들은 함께 하면서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민족 간 양쪽으로 갈라진 나라의 역사를 이해했고,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있으며 세상에는 여러 모양의 아픔과 깨어짐이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으로 도울 때 행복하다는 것을 나이만큼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한 달 뒤 나이지리아에서는 수도인 아부자(Abuja)에서도 차로 5시간 정도 더 걸리는 조스(Jos) 지역의 시골 마을에서 4주간 머물렀다. 6명의 이삼십 대 미국인 팀원들과 함께 쥐가 다니는 한 방에서 같이 생활하며 밤이면 전기가 없어 칠흑같이 깜깜 해지는 일상이 처음엔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도 여의치 않아 몇십 미터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끓어야 했는데, 창문이 뻥 뚫린 화장실에서 불순물이 둥둥 떠다니는 찬 우물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는 건 정말 힘들었다. 아들은 이 경험 때문에 지루 피부염으로 인한 원형탈모로 몇 년간 고생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리가 봉사했던 보육원이나 학교, 매춘 여성 재활 훈련소 같은 곳들은 과연 21세기에 이런 곳에서 삶을 영위해갈 수 있는지 매일 의문이 들었다. 한편으론 내가 겪은 일들과 우리 형편이 가장 불쌍하고 억울하다고 느꼈던 자기 연민에 가까운 생각들이 조금씩 부끄러워 갔다.


이들은 개인의 노력이나 선택으로 상황을 바꿀 수도 없는 어쩌면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구조적인 부당함에 놓여있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후진국에서 여자로 아이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먹고 마시고 교육받고 안전하게 살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박탈당한 불공정함과 비정의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내가 겪은 상황들이 최악이라 여겼고 그들의 가난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좁은 식견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in Nigeria


감사하게도 아들은 늘 밝고 즐겁고 씩씩했다. 아프리카에서도 매일 맨발로 돌산을 뛰어다니고 염소를 몰며 여전한 골목대장 노릇을 하면서, 공평하지만은 않은 세상의 모습을 직접 보고 그 이유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공책도 없이 찢어진 종이에 더하기를 배우고 한글이 쓰인 낡은 가방과 옷을 입고 다니는 이유를 물으며 속상해했다. 아빠 엄마들이 일할 것이 많이 없고 살 수가 없어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학용품과 옷들을 비행기로 보내준다고 알려주었더니 왜 그래야만 하는지 등 많은 것을 궁금해했고, 북아일랜드에서처럼 자기 장난감으로 즐겁게 놀 때 좋아했으므로 떠날 때 모두 선물하고 싶다는 등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한 번씩 어린 아들을 데리고 아프리카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할 때가 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귀한 경험은 나에게는 아무리 지구 끝 험난한 곳이라도 평생 아이를 지키고 잘 키울 수 있다는 의지를 다지게 했다. 아이에게는 경험하는 세계의 폭을 가능한 한 넓게 확장하고 어떤 곳이라도 환경에 적응하며 즐겁게 생활할 수 있다는 큰 경험이 되어 주었음에 감사한다.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아들은 이미 8살 때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대륙 나라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삶과 문화를 체험했으며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아이가 경험하고 품게 된 세상은 학원이나 문제집에 갇혀있는 일차원적이고 좁은 공간이 아니라 지구본을 돌려가며 대륙마다 특징을 이야기하고 아웃리치 가고 싶은 나라를 생각하는 살아 움직이는 넓은 세상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아들은 그렇게 세상을 아는 만큼 이후 더 넓은 선택을 하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가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아이로 커갔다. 그 넓어진 세계관만큼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로 커 갔다. 엄마와 내가 처한 현실이 평범하지는 않지만 가장 불행한 것이 아니며, 이 세상에는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으며 아빠가 없이도 잘 커갔다.


아이가 이렇게도 아웃리치에 잘 적응하며 지낼 수 있었던 데는 사회성 때문이기도 했는데, 원래 그랬다기보다는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며 어느 나라 어떤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어떤 환경에도 적응해가는 역량이 자연스레 커갔던 것 같다. 그렇게 길러진 사회성은 아이가 커가며 달라지는 환경에 잘 적응하고 친구들 간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좋은 토대가 되었고, 어느 나라나 어떤 연령대 사람들과도 격의 없이 관계할 수 있는 자신감의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경험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세상을 위해 어떻게 이바지하고 싶은지에 대해 나이에 맞게 탐구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 나이에 쉽게 할 수 없었던 값진 경험은 차별화의 시작이 되어 어떠한 선행학습으로 살 수도 이길 수도 없는 자신만의 무기가 되어주었다.


공부를 비록 좀 못하는 순간이 와도 남들처럼 완벽에 가까운 공부 스펙을 쌓지 못해도 자연과 친구와 놀며 세상을 누빈 경험은 자신만의 무기가 되어 독특한 스토리를 쌓아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수많은 경험과 체험을 통해 인내와 자존감, 도전, 정의 등의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가치들을 배웠으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직접 고민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어릴 때의 경험이 많고 다양할수록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아이가 가고자 하는 방향도 넓어지기 마련이다. 자라며 경험하는 폭이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만들고 어느 곳에 발을 딛고 어떤 것을 보며 어디에 시선이 머무느냐에 따라 인생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다양한 사람과 관계하며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며 세상에 이바지할 꿈을 꾸었던 경험이 아이의 특별함을 만들고 유능함의 기초를 다져주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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