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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Oct 19. 2022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와 닿았던 날

15년만에 아프리카 친구를 만났다

지난 학기부터 상담학교를 섬기며 미국, 한국, 브라질, 나이지리아에서 온 18세부터 72세까지 여덟명의 학생들과 지냈다. 대학원까지 한국에서 나온 전형적인 한국인인 내가 다문화(multi cultural)와 다세대(multi generation)를 동시에 경험하며 영어로 생활하는 건 큰 도전이고 매일매일이 나와의 씨름이다. 하고싶은 말을 반도 표현 못 하는 바보같은 느낌과 씨름해야 하고, 의사소통도 편하게 안 되는데 학교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은 초라한 느낌과도 싸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으로 인해 한 학생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감사한 일이 일어났다.


학교가 처음 시작되던 날,  나이지리아에서 온 남학생이 등록을 하길래 반가운 마음에 나도 15년 전에 너희 나라에 다녀왔노라며 아웃리치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잠시 생각 후 나와 우리 아들을 아는 것 같다며 정확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나이지리아에서 만났던 2007년은 각자에게 특별한 해였으니 서로의 기억은 명료했다.


나는 만 서른에 돌싱이 되어 일곱살 아들과 함께 한국을 도망치다시피 떠난 뒤 나이지리아로 아웃리치를 떠난 해였고, Peter(가명)는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로 길거리에서 생활하다 열 세살에 선교단체 팀에 의해 구제되어 막 안전한 생활 터전이 생긴 해였던 것이다. 피터는 그 곳에서 지구 반대편 젊은 아시안 싱글맘과 아이를 만났으니 그 기억이 꽤나 강렬했나보다. 우리 아들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그 때 꽤 많이 친해지고 싶었노라고 했다.

What a small world! (in Jos, Nigeria 2007)


서로 "What a small world!"를 외치며 15년만에 같은 학교에서 새로운 우정을 맺어갔다.  피터는 어느 덧 20대 후반의 멋진 청년으로 자라있었다. 꽤나 멋을 잘 부리는 깔끔한 외모로 SNS에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독일 베이스의 리더를 맡고 있는 매력적인 남성이 되어있었다. 자기 이름도 못 쓰던 길거리 소년(Street Kids)에서 영어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차세대 리더가 된 드라마틱한 반전 스토리는 사람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기숙사에서 교실까지 내려오는 10여분의 짧은 시간에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대화하느라 여러 번 멈춰선다는 그야말로 캠퍼스에서 빛나는 아프리칸 셀럽이었다.


그런데, 그렇듯 늘 밝고 유쾌한 피터지만 상담 학교에 있는 동안 어느 순간에는 마음을 닫고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건 바로 자신을 의도적으로 버린 부모 특히 15살 어린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좋은 집에서 공부시켜준다고 맡겨놓고 점차 찾으러오지 않던 그래서 결국 길거리에서 살게 내버려 둔 계획적으로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해 나눌 때에는 너무나 덤덤한 표정으로 소설 속 이야기처럼 말을 하곤 했다.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고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한 티칭과 사역이 있던 날이었다. 모두들 특히 자아상의 왜곡과 상처, 용서에 대한 부분을 다룰 때는 여러 학생들이 너무 마음 아파했다. 피터는 그런 주제가 불편했는지 교실 젤 뒷 편에 표정없이 앉아 관심없다는 듯 처음부터 딴 생각을 하듯 앉아있는게 마음이 쓰이던 차였다.  


뉴질랜드에서 줌으로 세션을 진행하는 강사님이 간사들에게 많은 역할을 맡기신 터라 나는 학생들을 위해 마음을 쓰며 기도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피터에게 다가가 위로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무관심해보이는 피터에게 거절을 느낄까 조심스러우면서도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Can I pray for you?". 피터는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러면서 너무나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버려져 길거리에서 고아로 살아가며 겪었을 아픔과 슬픔, 분노, 서러움 등의 감정들이 강하게 느껴져 나도 내 마음을 주체 못 하는 듯 피터의 몸에 손을 얹고 소리내어 울었다.


어떻게 보면 그 아이의 상처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어졌다. 30분 이상 너무 우느라 내가 안 되는 영어로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I want to say sorry and please forgive me as a mom and adult who hurt you when you were a kid. "라고 분명하게 용서를 구했다.


어느 덧 나와 함께 울기 시작했던 피터는 내가 한 사람의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던 순간부터 폭풍같은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20대 후반의 다 자란 아프리카 청년이 아주 오래 상관없이 살아가던 아시안 아줌마의 품에서 한참을 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눈물은 7살 때 엄마에게 버려진 트라우마로 생겼을 슬픔, 분노, 거절감, 두려움 등의 수많은 감정들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차단하고 20년 가까이 직면하지 못했던 진짜 자기 마음과 상처에 대한 만남이고 진작에 목놓아 울었어야 할 눈물의 회복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세상에 이혼은 너무 흔하고, 유럽이나 미국은 정상적인 가정이 없다고. 다들 그래도 애들 그냥 잘 산다고. 아프리카에는 길거리에 고아가 널렸고 먹고 사는게 더 시급해서 그런거 못 느끼고 그냥 그렇게 다들 산다고.


그런데, 피터의 터져나오는 눈물을 보며 알았다. 그리고 상담학교에서 만나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부모로부터의 상처를 안고 와 있는 학생들을 만나며 오늘도 느낀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깨어진 가정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흔하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느끼는 각자의 상처와 거절감의 깊이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월드 와이드 동일하며  그 상처와 닫혀버린 감정은 인생을 살며 반드시 꼭 다루어지고 회복되어져야 할 것이라고.


피터는 교실을 떠나며 나한테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주 오랫동안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한테서 처음  들었노라고. 내 눈물이 어떤 기도보다 파워풀했다고. 자신의 감정과 상처를 직면하게 해 주어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아직 잘 다스려지지는 않지만 이제 그게 슬픔이든 분노든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그러면서 엄마에 대해 너무 큰 분노가 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7살 아이에서 멈춰져 얼어버린 감정들이 이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는구나 안심했고,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용서와 회복의 여정을 이제 시작하는 피터를 마음 속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우주이다. 먹고 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고 엄마 자신의 삶과 커리어가 얼마나 중요하다 할지라도 아이들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한 이상 정말 소중하고 책임감있게 길러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이 세상이 무너져도 엄마는 나를 지켜주고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아주 당연한 믿음이 없었던 피터는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7살 어린이에서 내면의 성장이 멈춰버렸고 자존감 형성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부족한 나로 인해 엄마의 사랑과 용서를 조금이나마 경험하고 대체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나는 내 아이들에게 학업적 성취 때문이 아니라 존재로 변함없이 사랑하는 엄마가 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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