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리고 엠씨스퀘어

by 김용석

봄은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머슴에겐 고달픈 농번기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주말마다 에일리의 지시사항을 이행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일이 하우스 옆 배수로 공사입니다. 작년 하우스를 지었는데 비만 오면 하우스로 물이 역류했기 때문입니다.

배수관, 고정핀 재료는 다 사놨는데 땅을 깊이 50cm, 폭 50cm로 30m를 파는 일이라 만만치가 않습니다. 계속 미루다 지난주 첫 삽을 떴습니다. 1m 파는데 숨은 턱까지 차고 땀은 비 오듯 흐르고...ㅠㅠ 아, 포크레인이 있었으면! 내 이 고생을 안 할 텐데...(알리엔 말도 안 되게 싼 포크레인도 있습니다~ㅠㅠ) 하지만 에일리가 안 사 줄 걸 아니까 아예 말도 안 꺼냅니다. 왜 안 사주냐고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ㅠㅠ

27~8년 전일 겁니다. 둘째가 태어나기 직전 제 침샘에 사리가 생겼습니다.(이때 농담 삼아 나 만나려거든 108배 하고 오라고 장난도 쳤었죠~ㅎㅎ) 돌 또는 결석이라 부르는 게 생긴 것이지요. 침샘의 돌도 여느 결석처럼 통증이 무지 심한데 맥주 마신다고 나오지도 않습니다. 참다 참다 결국 그 사리를 빼는 수술을 하게 됐는데, 침샘 주변에 신경이 워낙 많이 지나다 보니 수술 후 입이 한동안 삐뚤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수술 후 직장 복귀도 못하고 몇 달을 쉬게 됐습니다. 그때였죠... 제가 구매 제한, 구매 사전허가제 대상자가 된 게...


수술 후, 집에 누워 곰곰이 저와 가족의 미래를 생각해 봤는데 어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한 겁니다. 당시 저잣거리 소문에 한의사가 되기만 하면 배 떵떵거리며 열 식구는 너끈히 먹여 살린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아... 이거다! 아무런 스펙도 없고, 대학도 의미 없다고 때려치운 내가 살길은 한의사다! 이런 생각이 퍼뜩 드는 겁니다. 그래서 에일리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 - 부인, 한의사가 되면 집안 식구 배곯을 일이 없다고 하오. 한약 한재만 지으면 보름 쌀값이 나온다 하니 이 어찌 놀랄 일이 아니겠소. 부인! 한의대를 가야겠소...

에일리 - 가는 거야 좋지만, 학교 다닐 때도 놀기만 하고 성적도 뒤에서 세는 게 빨랐단 사람이 가능한 일이겠소?

나 - 허... 무슨 말이오. 내가 그 공부란 걸 안 해서 그렇지 절대 못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오!

에일리 - 그렇다면! 어차피 일도 못 하는 상황 한번 도전해 보시오. 당신이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내 뒷바라지는 해드리리다!


그렇게 5월부터 입시 준비를 하는데 말입니다. 원래부터 놀기 좋아했던 저인데 서른이 돼서 뭘 하려니 집중이 될 리가 있습니까? 이해도 안 되고 외운 건 다 까먹고... 그렇게 제 녹슨 머리에 한계를 느낄 때였습니다. 독서실 식탁에 놓여있던 신문 한 귀퉁이 광고면이 눈에 띄는 겁니다.


<집 나간 기억도 돌아오게 만들고, 집중력도 하늘을 찌르게 만드는 /엠씨스퀘어/엠씨스퀘어/엠씨스퀘어! 아직도 안 샀니?>


호갱님 어디 갑니까? 이거다! 내... 이놈만 있으면 막혔던 수학 문제도 술술 풀고, 읽었던 모든 것을 기억해 한의대도 그냥 합격하리라... 그날부터 어떻게 엠씨스퀘어를 득템 할 것인가만 고민했습니다. 엠씨스퀘어만 떠올리면 저절로 긍정적 상상도 막 되는 겁니다. 한의원으로 찾아온 에일리와 애들에게 지갑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만원 짜리를 딱 잡아서 용돈도 막 주는 그런 상상!


그걸 믿냐고 하는 에일리를 조르고 졸라 그 엠씨스퀘어란 걸 기어코는 샀습니다. 그리고 두둥... 결과는?


제가 지금 한의사가 아닌 건 다 아시죠? ㅎㅎ

애들은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요 엄청난 점수차로 한의대에 떨어졌는데, 떨어진 것보다 더 큰 시련은 엠씨스퀘어였습니다. 에일리는 아직도 심심찮게 저를 놀립니다.


에일리 - 집 나간 기억도 돌아오고 잠자던 수학문제가 벌떡 일어나 '정답은 3번! 3번입니다' 이런다며...

그 이후 뭐 사달라고 조르면 그놈이 엠씨스퀘어가 제 발목을 잡고 놔주질 않네요... 아...포크레인 사고 싶은데...ㅠㅠ


나 -이 포크레인만 있으면, 자기 한숨 낮잠 자고 나면 배수로 공사 다 끝났고, 산 아래 가시덩굴도 재채기 한번 하는 사이에 내가 다 마칠 수 있다니까?

에일리 - 아... 그러세요? 그냥 쉬엄쉬엄 하세요...


천삽 뜨고 허리 한번 펴는 호갱님의 하루는 오늘도 이렇게 고달프게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