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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학나경 Feb 23. 2023

연대의대에서 조선대 간 사람 말고 그냥 백윤성

연세대 의대에서 조선대 수학교육과로 간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

귀하신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 연대의대에서 조선대 수학교육과를 간 소문의 그. 급기야는 스브스뉴스에 사연의 주인공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스브스뉴스, 광주일보, 학나경 let's go.


김지연 쏟아지는 관심이 어떤가. 좋나, 싫나.

백윤성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는데 이제는 즐긴다. 지금은 관심의 역치가 올라갔다. 광주일보랑 스브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나서, 오늘도 인터뷰 두 개 하고 왔다.


김지연 학교 단톡에 들어가도 알아본다고 들었다.

백윤성 (입학식 전이지만) 조선대에 몇 번 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알아보는 사람이 있긴 했다. 학교 홍보팀에서도 만나고 싶어 했다.


김지연 본인이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백윤성 스스로는 평균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주위 말을 듣고보니 아닌 것 같다.


김지연 왜 사람들이 연대 의대에서 조선대 수학교육과로 간 사례를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나.

백윤성 학벌이 줄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들고 있는 사회이긴 하지만, 아직도 학벌이 가져다주는게 많이 남아 있긴 하다. 연대 의대에서 그걸 포기하니까, (조금 중2병스러운 표현이긴 하지만 누군가의 말을 빌리면) 천상계에 있다가 자기 뜻으로 하늘로 떨어진 거다. 그러면 그럴수록 표적이 되기 쉽다. 자기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물어뜯으면서 자신의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라. 관련 기사마다 악플다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 딴에는, 내가 못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한 거다.



김지연 다음과 같은 문구를 쓴 적이 있다. "인생은 공평하니 뭐니 하는 것은 공평함을 지향해야 한다는 도의적인 말이지, 현실을 기술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어떤 플레이를 할지는 본인 몫인데, 후자인 사람들은 피나는 노력을 이야기 하지 않고 전자인 사람들은 불합리하다고 불평만 하는 경향이 있더라고. 교사가 되면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냥 막연히 행복만이 기다린다고 사기극에 가담하는게 아니라, 함께 학생의 스탯 중 무엇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주는." 이 문구는 어떤 의미인가. 교사가 되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백윤성 현실은 냉혹하다.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니까.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인간이) 계속해서 고민하고 나아가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사들이 가르칠 때는, (사회는) 너무 냉혹하다 라는 것만 강조를 하거나, 아예 따뜻하게 살아요 라는 말을 하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당근과 채찍은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냉혹하지만, 동시에 너희가 열심히 하다보면 어떻게라도 버틸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걸 가르치고 싶다.

김지연 현실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건가.

백윤성 아까 말했던 것처럼, 너희가 지향해야 할 점과 현실이랑은 별개니까 그 두 개를 다 가르쳐주기는 해야 한다. 어느 한 쪽만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연어를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표현을 한다. 근데 사실, 당장 굶어 죽겠으면 연어를 잡아줄 필요도 있다.


김지연 교육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교육의 목적은.

백윤성 나는 딱딱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교육은 민주시민의 자질 함양이 목적이다. 기본적으로 정해져 있는 교과목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다. 교육기본법 2조에 찾아보면, 중등 교육의 목적은 민주시민의로서의 자질 함양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게(교과목적인 지식)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김지연 수학교육과도 그래서 갔나.

백윤성 수포자 친구들은, 미적분 이런거 어디다 써먹냐,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문제 상황이 튀어나왔을 때, (수학 교육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물론 아웃소싱 할 수도 있지만, 아웃소싱을 하지 않고서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거다. 고등학교 수은 논리와 산수다. 대학수학은 민주 시민의 자질 함양에 뭐가 쓸모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수학까지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지연 사연이 있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과외를 해주기도 하고, 사비로 장학금을 준다고 들었다.

백윤성 나는 사회를 바꾸고 싶다. 그런데 바꾸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행동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나뉜다. 내가 국회위원 같은 게 아니니까, 개인적 차원에서 바꿀 수 있는 걸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에 투자해서, 걔네가 성공하고 성공한 애들이 다시 투자하고.. 그게 반복이 되는 건 어떨까 싶었다. 내가 두명을 그런 식으로 지도하면 그 두 명이 다른 두명을 또 지도하고 하는 식으로. 세대를 거듭하고 거듭할수록 계속해서 축적이 되는 거니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사회가 바뀌어 나가지 않을까.

김지연 개인으로서는 사실 구조를 지금 단숨에 바꾸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건가.

백윤성 맞다.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거다.


김지연 사교육에도 종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공교육에 몸 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

백윤성 중고등학교때부터 공교육에 쌓인 게 많아서, 원래는 공교육 안락사가 맞지 않나 싶었다. 근데 정말 그래버리면, 부의 재분배 같은 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으니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교육을 죽일 게 아니라,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면 나 같이 공교육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없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김지연 어떻게 보면 더 멀리 볼 수 있게 된거다.

백윤성 너무 멀리까지 봐야 되서 좀 힘들긴 하다. 근시가 있는 것 같다. 이제 안 보인다. 너무 멀어서.


김지연 페북 이름도, 인스타 이름도 본명 대신 고한이라고 써 있다. 이건 어떤 의미인가.

백윤성 예전에 있었던 동아리에서 쓰던 가명이다. 내가 성격이 확고한 편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고한'이라고 붙여줬다. 고환 같기도 하고, 혹은 학고를 받아라 뭐 이런 뜻도 있고.. 어떤 친구는 동방요정을 줄여서 방요였다. 근데 실제로, 우리말 대사전에 고한이라는 단어가 있더라. 쓸 고에 찰 한이라고.

김지연 고한이라는 이름이랑 잘 맞는다.


김지연 의대를 두 번 입학하고, 다시 다른 대학교의 수학교육과로 입학했다. 본인에게 20대의 탈주 경험이 주는 의미는.

백윤성 결국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라는 교훈이 아닌가 싶다.

김지연 8년을 돌고 돌아서 온 건가.

백윤성 8년을 돌고 돌아서 왔어도, (의대에서 탈주를 하지 않았으면) 한 40년을 고통받았을 거다. 그래서 싸게싸게 피했다는 생각이 단다. 상대는 궁극기를 썼는데, 나는 일반기로 피하는 느낌이랄까.

김지연 탈주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건가. 그럼 만약, 탈주냐, 존버냐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백윤성 나도 다 계산해보고 했다. 그 기로에 서 있었는데, 더이상은 안되겠다, 과감한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싶었다.

김지연 존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백윤성 맞다. 도지코인 같은 것처럼.


김지연 그러면 탈주할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나.

백윤성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데, 졸업을 할 수 있냐 없냐 정도는 재고 해야 한다. 나는 1~2년 더 빨리 탈주할 걸 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떄는 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김지연 그 때 안한 이유는 뭔가.

백윤성 보스 잡을 때 1트만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지 않나. 초등학생 때 문구점 앞에 메탈 슬로그 게임기에서 보스전 하다가 죽으면 동전 한번 더 넣어보는것처럼


김지연 지금은 연대 의대에서 조선대 수교과로 간 사람으로 너무 유명해졌다. 그런 요소를 빼고 진짜 알려지기를 원하는 모습이 있나.

백윤성 듀얼킹(유희왕).. 후루요니(보드게임)..

김지연 그 세계에서 네임드를 먹는 건가.

백윤성 그러고 싶은 건데, 그게 마음대로 안된다. 어쩌다보니 이런 걸로 알려지게 됐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 내 자리. 하면서 등장하고 싶다.

김지연 보드게임을 만들 생각은 없나.

백윤성 나는 복잡한 걸 좋아해서, 내가 만들면 룰이 복잡하다. 만들었을 때 상품성이 없다. 예전에 와디즈에서 펀딩도 열었는데 돈이 안 모여서 실패했다.


김지연 표면적으로 동등해보이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고 치자. 그럼 본인이 선택을 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백윤성 무조건 사회와 체제의 안정성이다. 개인적인 선택은 개인적인 선호를 반영할 수 있지만, 모든 조건이 동일하지 않다면 사회와 체제의 안정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와 체제가 안정적이어야 결국 연약한 나 자신에게 득이 돌아온다. 모든 선택이 결국 나 개인으로서는 비극이 될 수는 있어도, 사회적으로 봤을 때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김지연 학교를 옮긴 것도 그런 맥락인가.

백윤성 그건 아닌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작성자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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