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온 돌보 Oct 15. 2024

떠남을 말하지 말아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뒤로 하고 떠나는 일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것 같다. 

또다시 헤어짐을 경험해야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 같다. 

떠남을 결심하기까지 나는 단단해져 가야만 했다. 그래야지 떠날 수 있었으니까. 


내겐 아픈 엄마가 눈에 밟히었다. 슬픈 눈동자가 비추었다. 떠남의 이유는 충분했다. 뒤따르는 슬픔을 감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몫이었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꼭 그래야만 되냐고. 적어도 지금만큼은 떠나는 것이 맞으니 결심해야만 했다. 당신을 떠나기로. 




엄마는 아팠다. 희귀 난치병에 걸려 깊은숨을 쉬어도 보통 사람의 절반에 절반도 쓸 수 없는 몸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런 엄마를 두고 간다는 것은 끝을 함께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처음 우리 계획을 전할 때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차마 가지 말라는 말을 못 꺼내었다 엄마는. 그런 엄마가 내게 처음 내뱉은 말. 힘들지 않겠니? 


어쩌면 그녀 자신에게 되묻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끝내 꺼내지 못한 말, 가지 말라는 말. 엄마인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어도 그럴 것 같았다. 붙잡는 것이 딸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할 수 없는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수능 전 날, 나는 한숨을 자질 못했다. 밤새 뒤척였고 불안에 떨었다. 어쩌면 한 번의 기회, 잘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불편한 잠에서 일어나 나온 거실은 언제부터 준비했을지 모를 밥 냄새로 진동하였다. 어차피 잘 보지도 못할 시험에 왜 엄마가 성화냐며 갖은 성질을 다 내며 나섰던 그날, 점심시간에 열어본 도시락통 속 뭇국에는 그녀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밤새 잠 못 이룬 내가 체하기라도 할까 소화 잘되라며 준비한 소고기 뭇국.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끼니로 배고플까 챙겨준 가방 한 구석 귤 두 개를 이해하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우리를 감싸 안은 침묵의 시간 속에서 흐르는 것은 뜨거운 눈물뿐이었다. 엄마의 진심을 알기까지 나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린 것만 같았다. 




그런 슬픔은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떠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의미했다. 소중함의 옥석을 가리는 듯한 가치판단을 해야 된다는 의무감으로 몹시도 괴로웠다. 그러나 우리에겐 너무 많은 이유가 뒤따랐다. 가기 위해선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위성처럼 곁을 머물던 부모님을 두고 떠난다는 것에는 엄청난 슬픔이 뒤따랐다. 때로는 서로의 결정에 화가 나기도 했다. 너 때문에라는 전제를 달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원망하는 듯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오직 우리가 아닌 너만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무언가를 위해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 것 같다. 더구나 그에 따르는 기회비용이 사랑에 관한 것일 때 더욱 많은 생각을 일게 한다. 그럼에도 가야만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풀어낼수록 어려운 이야기, 한 치 앞도 모를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내려고 한다. 

지금도 가는 게 맞냐 묻는다면 여전히 대답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가야 되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나는 대답하고 싶다. 

이전 02화 우리 괜찮은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