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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Mar 03. 2024

웰컴투 삼달리 #4/4

04. 문화는 곧 삶이다

4. 문화는 곧 삶이다.


삶의 터전과 환경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환경은 곧 문화적 토대가 되고 가치관을 만들어 내며 또한 무리에 종속된 테두리를 만든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역사와 전통을 올바르게 알고 이해해야 함은 중요하다.


현재 눈앞에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의 대부분은 잘 돌아가던 가전기기가 어느 날 갑자기 고장 난 것처럼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사이에 차곡차곡 쌓인 그 무엇인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앞서 서양의 자본주의와 도시화가 편리성만큼이나 사람 인성에 해악을 끼친다고 했는데, 그 기저에는 문화에 대한 편견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다. 문화란 너무나 익숙해서 자기 자신이 그 안에 머물러 있음을 모르며, 익숙하고 당연시하는 만큼 위험성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물고기가 물속에 사는 것처럼, 우리가 숨 쉬고 살면서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듯 한 이질적인 차이들은 역사를 살펴보면 커다란 전쟁의 원인이었던 적이 많다. 그만큼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는 곧 이념의 차이이며, 믿음의 차이가 된다.


우리는 고조선으로부터 조선시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자랑삼아 떠들어대지만, 역사는 시간적 길이가 길다고 훌륭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의 역사는 양반 문화, 유교 문화, 불교문화 등 대부분 왕실과 양반 계층과 관련되어 있다. 그에 비해서 민간의 이야기는 거의 역사에 남아있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 공부는 미화하고 찬양하기에 바쁘다.


힘없고 작은 나라가 중국의 문화와 정치에 종속되어 체통과 체면을 중시하며 점잖은 양반 문화와 중국보다도 더 강력한 유교적 전통을 자랑삼지만, 정작 왜 따라야 했는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등의 비판적 사고는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화재와 유적지는 온통 불타고 파괴되고 도둑맞고 제대로 지켜낸 것이 없어도 현실의 사회 지배층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시대적 흐름에 냉큼 올라타 이익과 성공에만 몰두하는 이기적인 사심 이외에 인간적 가치, 정신적 가치, 역사적 가치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시대요, 그런 사회가 되고 말았다.


생때같은 젊은 생명들이 수장되고(세월호), 서울 도시 한복판에서 많은 목숨이 질식해 죽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이태원)에도 그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아도 굳건하게 유지되는 권력이다. 정치를 떠나고, 하나의 국가 차원에서 국방을 떠나고, 국가 간 외교 문제를 떠나 순수하게 인간 생명의 존귀함만 따져보더라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건만, 수습도, 반성도, 책임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에게 반성이나 사과 따위를 애초에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인지도 모른다.


통치 세력의 반성 없는 내력은 사실 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이유는 찾아보면 많다.


조선 후기에 발생한 농민 봉기는 철저히 권력에 봉쇄되어 그 흐름이 끊겼고, 우리 왕족은 농민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중국)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청나라의 간섭은 곧 일본 세력을 우리 땅에 들이도록 만들었으며, 그 역사가 쭉 이어져 결국 나라를 빼앗기는 비극에 이른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비극은 그 이전에도 있었던 수많은 전쟁과 수탈, 외세의 침략보다 결정적으로 이 시기(정조 승하 후 순조 즉위 이후)의 세도정치에서 비롯되는 권력 싸움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즉 외부로부터의 칼질보다 내부에서 스스로 후벼 판 책임도 있다고 생각된다.


유교와 성리학은 모두 중국의 문화에 종속된 양반들을 위한 학문이었고, ‘뼈대’를 중요시하던 소위 사대부들의 폐쇄성은 세종대왕께서 어린(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만든 훈민정음도 ‘언문(諺文)’이라 부르며 배척했다. 

지금이야 자랑스러운 우리 글이라고 온 세상에 자랑해 대지만, 한글도 만들어진 당시에는 천시당했고, 위기의 순간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한 이순신과 같은 인물은 끝내 유배를 가야 했으며, 조선의 과학을 눈부시게 발전시킨 장영실과 같은 인재도 결국 그 끝은 불행하였다.


반면에 광복을 맞이한 이후에는 미국의 문물과 문화를 우리 스스로 찬양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일본의 식민정책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개혁을 이루었고 경제적 발전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가 21세기에 들어 전 지구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로 남겨진 것은 그 처음도 미국과 소련의 힘겨루기 때문이었고, 현재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도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의 이해타산에 따른 것인데도 여전히 사대주의적인 정치를 정도인양 외치는 사람들도 많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침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나뉘고 찢어지고 또 나뉘었지만, 오늘날에도 우리 정치는 이를 통합하여 화합할 생각은커녕 좌우로 나누고, 여야로 나누고, 진보와 보수로 나누고, 남녀로, 세대로, 빈부로… 분열하고 또 분열하고 다시 분열하고 있다.


역사에서 굵직한 탄압과 학살의 많은 부분이 타국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같은 동족, 특히 당시의 지도층에 의해서 벌어졌다는 점은 이들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이렇듯 문화는 정치, 사회, 경제를 포함한 우리의 모든 바탕이며, 삶 자체이다. 무작정 서구적인 문화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의 전통은 낡고 버려야만 하는 것처럼 천시하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이런 문화적 편견은 서구 자본주의 생태와 만나 더욱 잔혹한 사회를 만들어 간다. 이제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한계를 넘어서 버렸다. 격차는 더 큰 격차를 만들고, 특히 빈부의 격차는 다시 모든 문화적 격차로 이어진다. 즉 악순환이 되고 만 것이다.


<웰컴투 삼달리>는 이러한 문화적 악순환이 빚어낸 결과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조용필과 조삼달의 이야기 외에도 큰언니 조진달과 전남편 전대영 사이의 불화도 따지고 보면 시대적인 아픔이다.

대기업이 가족 사유화되고, 사유화된 기업은 전통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면서 시민들 삶의 틈으로 파고든다. 경제적 유불리에 따라 인간적인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홀로 외면당하고, 용의 도시를 떠나 유배를 떠나는 충신처럼 고립된다.


막내 조해달도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문화적 다양성, 다문화 가정 등 보편화되는 사회와 문화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척당하고 편견으로 가득한 시선을 피해 달아나야 하는, 힘없고 외로운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문제는 우리의 정부나 정치인들은 그 세세한 아픔들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데 있다.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니 제주도 현지에 사는 사람들조차 알아듣기 어려운 제주도 방언의 구사를 비판하는 글이 있었다. 나 역시 드라마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물론 제주도 방언 잘 모른다. 그렇지만 왠지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못할 뿐 아니라 인위적인 조작(?)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왜 제주도 현지인들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일삼는 드라마가 되었을까? 그만큼 제주도나 독도가 우리 일상에서 멀어져 있다는 얘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해녀들의 공동체는 무슨 조폭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역 공동체 사이에 패싸움 장면이나 별 특이점도 없이 무조건 모두에게 존경받는 해녀 회장의 위치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무슨 조폭이나 사무라이 단체인 줄…


또한 제주도의 배경과 장소들도 너무 미화시키기만 했다는 생각이다. 제주 사람들의 경제생활에 관광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과 많은 관광객이 찾는 섬이라는 점에서 피폐해진 제주 민심과 자연환경도 있는 그대로 드러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드라마든 영화든 간에 요즘 더욱 그 한계점을 느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묘한 한계점들이 작품마다 아픔처럼 느껴진다.

창작자와 제작자들의 혼신에 찬 노고와 투자자와 경영자들의 자본주의적 상품화 사이에서 빚어지는 차이에서 무엇인가 꼭꼭 조여 짜내는 듯한, 눈물처럼 무엇인가가 뚝뚝 떨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어서 우리 문화계에도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기를 고대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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