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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막 네오 Feb 14. 2024

웰컴투 삼달리 #3/4

03. 그들이 헤어진 진짜 이유

3. 그들이 헤어진 진짜 이유


드라마 스토리의 중추가 되는 삼달이와 용필이의 안타까운 헤어짐에도 분노와 미움이 바탕이 되고 있다.


용필의 아버지 조상태는 사랑하던 아내 부미자가 삼달의 어머니인 고미자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고미자를 미워하고, 그 미움은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서는 용필과 삼달의 이별을 표면적으로는 이렇듯 원망과 미움이 원인인 것으로 표현했지만, 나는 조금 다른 상상을 해보았다. (개인적인 상상입니다. 드라마 내용과 관련 없음)


이야기의 배경인 제주도는 예부터 양 씨, 고 씨, 부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탐라국을 이루고 살았다. 그래서 이 세 성의 본은 제주다. 이성동본(異性同本)인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인 용필과 삼달은 두 사람 모두 조 씨다.


제주도가 본인 양 씨, 고 씨, 부 씨는 아니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나무위키]를 참고하여 알아보니 조 씨 성의 경우에는 성씨가 같아도 본은 많다. 성으로 사용하는 한자는 趙 자와 曺 자를 사용하는데, 趙자 성씨는 2015년 인구 약 100만 명 이상으로 대한민국에서 7번째로 흔한 성씨라고 한다. 그에 비해 曺자 성씨는 약 39만 명으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용필의 어머니는 부 씨이고, 삼달의 어머니는 고씨다. 즉 제주 토박이임을 잘 표현한 셈이다.

두 여성이 가수 조용필을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조 씨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했다?

사실 이런 논리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더 웃기는 코미디가 아닌가!


어쨌든 부 씨와 고 씨 이외에 양 씨가 있다. 만일 두 사람이 제주에서 조 씨보다는 쉽게 만날 수 있는 다른 성씨인 양 씨 성을 가진 남자와 결혼했다면, 조삼달은 양삼달, 조용필은 양용필이 될 것이다. 문제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이라는 것.


동성동본인 남녀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은 조선시대에 처음 생겼다고 한다. 유교적 전통을 중시한 터라 우생학적 이유와 가족의 범위 등을 지켜낸다는 이유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조선총독부가 동성동본금혼제의 변경을 추진했지만 ‘혈족결혼’은 일본의 관습이라며 조선의 미풍양속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존치되었다.

광복 후에도 1960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대한민국 민법 제809조에는 동성동본금혼이 규정되었다.


‘혈족 간 결혼은 열성 자손을 낳는다’라는 과학적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잘못된 우생학적 인식과 구습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무조건 지켜내야 한다는 성균관 유림 등의 반발은 강력하게 작용했다.


불필요한 허례허식까지 장점·단점 가리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도 무작정 지키고 따라야 할 민족적 전통이자 가치라고 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행태다.


시대가 변하고 인식이 변하고 사회와 직업, 문화, 교육, 정치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변화한다.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전통의 가치와 새로움에 대한 가치의 격차가 커지면서, 지금은 세대 간 불통의 늪이 깊어지고 말았다.


전통을 무슨 권력처럼 핑계 삼아 권위와 체면을 유지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많은 사랑하는 연인들이 억지 이별을 해야 했고, 의료보험 등 사회적 혜택에서 배제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집안 어른들의 반대와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동반 자살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악법은 1978년, 1988년, 1996년에 걸쳐 세 차례에 특례법(혼인에관한특례법)으로 사실혼 부부가 혼인신고를 할 수 있도록 구제하는 임시적인 방편만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5년 3월 31일 민법 제809조가 개정되면서 동성동본 금혼제도가 폐지되었고, 8촌 이내 혈족 등 근친혼만 금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양가 8촌 이내 혈족은 사실상 동성동본금혼제보다도 더 확장된 개념으로서, 관습으로 뿌리 박힌 이상한 개념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깊이 박혀있는지 강조했을 따름이다.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이런 불편한 복잡함을 비껴가기 위한 방편으로 본이 다양한 조 씨 성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당연히 작가에게 관심이 갔다. 작가 권혜주 님은 <웰컴투 삼달리>를 비롯해 김태희가 귀신 엄마로 나왔던 <하이바이, 마마>와 <고백부부> 등을 집필했다. 주로 가족, 부부의 이야기가 많았다.


작가님이 나름대로 조사를 한 것인지, 제주 탐라 건국신화의 내력을 알고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미자와 고미자의 성을 보면 분명 제주도 토박이에 대한 참고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토록 친자매처럼 친했던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인해 이웃이자 죽은 친구의 남편이 아내의 친구를 원수처럼 대한다는 것은… 사실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게다가 그 미움으로 인해 직접 아들의 연인이자 아내 친구의 딸에게 협박과 강요를 통해 고향을 떠나게 한다는 점도 공감되지 않았다. 또한 그토록 완고한 고집이 하루아침에 몇 마디 말로 풀린다는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진짜 원인다운 원인이 있는데, 작가는 그 원인을 사실대로 쓰지 않았다는 결론을 냈다.

완고하고 고집 센 용필 아버지가 삼달이와 용필이가 동성동본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을 반대했다고 하면 이해가 쉽다.


삼달이는 긴 세월 동안 고향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용필도 삼달이네 가족 옆을 지키면서 언제 돌아올지 모를 삼달이 때문에 고향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동성동본 연인은 그 특성상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딱 좋다. 그렇기에 어느 한쪽이 먼 곳으로 떠나야 한다. 그렇게 떼어놓으면 작은 마을에서 쉽게 돌 수 있는 소문도 막아내고, 다른 가족들은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고지식하고 체면 차리기 좋아하며, 가문을 중시하는 어른들일수록 말 그대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사달인 것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소재이기에 드라마 작가는 회피하고 싶었던, 그러나 지극히 있을 수 있는 현실적인 관계, 그 안에서 괴로워하는 두 사람…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데다 법으로까지 금지한 사랑.

이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드라마로는 다루기 어렵고, 다룬다고 하더라도 순리(?)에 맞게 해피엔딩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현실과 미디어는 늘 괴리가 있다. 왜냐하면 대중을 상대로 하는 상품은 시청률뿐 아니라 포장된 행복(인위적인 대리만족)과 더불어 교과서적인 사회풍토만이 가능해야 하니까.


안 그랬다가는 저 무서운 방통위(권력)에서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하루아침에 잘라낼지 모른다. 

시사·교양으로 청취율 1위, 시청률 1위를 하고 시민들이 폐지 반대 의견을 내도 무시하고 마음대로 밀어붙이는 ‘내 마음대로’ 권력이 있는 한, 우리는 비판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좋은 미디어로부터 격리되어 매일 찌르고 패고 죽고 죽이는 막장만으로 인성과 뇌를 채우게 될 것이다.


(#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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