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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Jun 16. 2024

실패를 대하는 부모의 자세

그 자세를 내 새끼가 배울 것이다. 

딸아이는 잘 놀다가도 이내 표정이 굳어버렸다. 감정의 기복이 없는 녀석인데 그날따라 감정이 널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이는 울음을 터트린다. 

흑흑흑 시험을 흑흑 망쳤어 내가 흑흑흑 점수가 흑흑 저번보다 흑흑흑 떨어졌어어어어어엉


얼마나 떨어졌냐는 질문에 지난번 보다 8점은 떨어진 것 같다는 아이의 표정에서는 깊은 절망감 같은 게 느껴진다. 이제 초등학생인 너는 왜 엄마 아빠도 전혀 뭐라고 하지 않는 이 점수에 이리도 예민해진 걸까?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아이는 괜찮지 않다고 했다. 부모가 아무리 괜찮다고 한들 네 스스로가 괜찮지 않으면 괜찮은 게 아니겠지. 안쓰러운 마음이지만 녀석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이는 하교 후에 한바탕 울고 저녁에 한번 더 울고 다음날 아침 등교 전에 한 번 더 눈물을 글썽인다. 

단 한 번도 그런 일로 울어본 적 없는 나와 남편은 그저 그런 내 새끼의 모습이 신기할 뿐이다. 

쟤 왜 저래? (우린 너무 공부 욕심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침부터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에게 물었다. 

그게 너의 아침을 망가뜨릴 정도의 일이니? 

한 순간이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오늘 하루 그냥 그 태도와 감정으로 보내야지 어쩌겠어. 너희 하루를 충분히 망가뜨릴 만큼의 중대한 일이니까 네 마음이 풀릴 때까진 어쩔 수 없지... 


녀석은 한참 고민을 하다가 내게 말한다. 

오늘 하루 망가뜨릴정도는 아닌 것 같아.  기분 풀어야지. 


그렇게 학교를 간 아이를 보며 담임선생님께 이멜을 보냈다.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에게 위로를 좀 해달라는 부탁의 이멜이었다. 


선생님의 답장이 빨리 왔다고 느꼈던 차 그녀의 이멜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아이에게 재시험을 치게 할 수 도 있습니다만 이런 경우에는 재시험을 보는 게 옳은 해결방법이 아닌 것 같군요.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도 좋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 받아들이는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아이와 잘 이야기하겠습니다."


내가 학구열에 불타는 엄마였음 당연 재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선생님의 말에 백 퍼센트 동의했다. 실패를 하는 경험도 중요하고 그 실패를 받아들이는 경험 그리고 그 실패를 뒤로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걸 가르치는 게 재시험을 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겠는가? 세상에 실패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니까 말이다. 


퇴근 후 나는 아이에게 슬쩍 물어봤다. 

오늘 선생님이랑 얘기 좀 했어?

뭐라고 하셔?

뭐 괜찮다고...

넌 어때? 

나? 아무렇지도 않아. 

속상한 거 없어졌어?

다음에 잘 보면 되는 거지 뭐. 


오늘 아침까지 눈물을 글썽이던 아이는 어느새 다음에 잘 볼 생각으로 어제의 실패를 이겨낸 듯해 보였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순간인가!



나는 나의 아이가 물론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건 아마 모든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난 내 아이가 실패를 잘 이겨내는 아이로 자라길 더 바란다. 부모로서 이제 초등학생인 아이의 실패를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패를 번도 겪지 않는 인생이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여정에서 패배감, 실망, 실패를 겪어본 적 없다고 말할 있는 사람이 단연코 사람이라도 있을까?  실패를 경험했던 그때 우리는 어땠는가? 어떻게 반응하고 해결했는가?


대실패를 경험했던 날 나는 방바닥을 뒹굴며 울었다. 바닥에 누워 온몸으로 울었다.

실패자라고 느끼고 낙오자라고 느꼈고 세상에서 나보다 더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릴 땐 줄담배를 피면서 씨발 씨발 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다시 시작하자라고 마음을 가다듬기도 했다. 때로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기도 했고 쇼핑몰에 가서 옷을 사고 치장에 힘쓰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잠만 잔적도 있고 잊고 싶어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딱 죽겠다 싶을 만큼 수영을 한 적도 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다가도 신은 날 버렸다며 화를 내기도 했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실은 글을 쓰고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다.  모든 경험을 후에 나는 도전했고 실패했고 성공했다가 다시 실패를 맛보는 일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20대 때의 나보다 40대 때의 나는 실패 자체보다 그로 인한 감정과 분노 혹은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힘쓴다. 즉 나를 돌보는 일에 힘쓴다. 나를 돌본다는 건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때 다시 시작할 힘도 얻는다는 걸 수많은 시행착오로 알게 되었으니까.


실패 없는 삶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패라는 경험이 사람을 얼마나 겸손하게 만드는지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지 알기 때문에 나는 아이가 실패의 경험을 매우 이겨낼 있는 단단한 아이로 성장하길 원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실패를 이겨내려 한다. 그걸 이겨내는 나를 보며 아이도 이겨낼 있는 방법을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 스스로가 건강하게 스스로를 돌볼 때 아이도 건강하게 제대로 배우지 않을까? 


우리 엄마 아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일상을 살았어. 나도 비록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오늘과 내일의 일상에 최선을 다해 살 거야.  그래서 더 단단해지고 더 강해져서 또 다른 기회가 오면 그때 더 잘할 거야! 만약, 아이가 그렇게만 성장한다면 부모로서 책임은 다했다고 본다. 뭐가 걱정할 게 있는가? 승승장구해도 좋고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을 내 새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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