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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Z Nov 01. 2024

목사의 돈 공부

두드리면 열리고 구하면 얻을 수 있는 게 돈입니까?

중세시대에서 벗어나면서 유럽은 다양한 발전을 이루었다. 경기는 살아나고 여러 신문물들이 다른 나라를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운 비단과 고급 오리엔탈 양탄자를 수입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온갖 향신료도 구할 수가 있었다.  음식의 풍미는 더해지고 걸치는 옷은 고급스러워지고 수출과 수입이 자유롭게 오고 가며 상인들은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자 그들에겐 큰 고민이 생기는데 바로 "구원"에 관한 것이었다. 


교회에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배웠는데 막상 상인들이 부자가 되니 두려웠던 것이다.  풍요롭게 현재를 살아도 죽음 이후의 삶이 보장되는 게 아니니 살아도 속 편하게 살 수 없었던 그들은 많은 돈을 들여 작은 예배당을 짓고 예술작품들을 교회에 헌납함으로써 영생을 얻으려 했다. 하나님이 자신들의 그런 공을 잊으실까 자신들의 이름과 얼굴을 새겨가면서 말이다. 


부자가 되는 것이 영생의 걸림돌이 되었던 시대가 있었으나 이제는 부에 대한 기독교적인 개념들이 많이 잡혀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점에만 가도 부에 관한 기독교 책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성도들이 읽을 수 있는 기독교적 부의 해석에 관한 많은 지침서들이 있지만 사실 목회자들에게 부라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고 욕심을 내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 여겨져 왔다. 


정말 그런 걸까? 목회자는 돈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돌 보듯이 해야 할까 하나님 보듯이 해야 할까? 


예전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담임 목사의 수행원을 하던 시절인데 부흥회를 막 마치고 차에 올라탄 담임목사가 가슴팍에서 봉투를 꺼내 돈을 세기 시작했다고 한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오만 원권 만 원권을 세던 그는 이내 봉투에 돈을 다시 담아 가슴팍 주머니에 넣었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지인은 멘붕이 왔다. 최저 시급도 안 되는 월급을 받아가며 목회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슴에 품고 살던 그에게 담임목사의 돈 세는 모습은 마치 말씀 팔아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얼마 전 뉴스에서 어느 목사의 전별금이 10억이었다는 뉴스를 봤다. 10억이라.... 20년 넘게 한 직장에서 일한 지인도 일억 받을까 말까 하던데 10억이란 숫자는 도대체 어떻게 계산이 된 걸까 싶었다. 그리고 10억을 달라고 하면 줄 수 있는 교회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그뿐인가? 나는 언젠가 커다란 다이아가 3개가 박힌 반지를 낀 목사를 만난 적이 있다. 3개의 다이아가 성부 성자 성령이라며 이 다이아를 만지면서 기도를 하면 그렇게 기도가 잘된다고 하였다. 무슨 개소리냐고?  그렇다.  나도 그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혔다. 그는 다이아반지에서 멈추지 않고 크레디트 카드를 보여주며 한 달에 500만 원씩 써도 하나님이 다 채워주신다고까지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게 아니라 성도들이 채워주는 것이겠지..... (결국 그 사람은 목사의 자격을 박탈당했다.)  출장 요리사를 불러다가 점심 저녁 식사를 한다는 목사의 이야기도 듣고 축복기도를 해줄 때마다 봉투에 돈을 채워 오라는 목사도 보았다. 자식들 유학비며 대학교 학비까지 교회 헌금으로 충당하려는 목사들과 고급 자동차에 기사까지 달려 보내달라는 목사들도 있다. 일반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을 받아본 이들은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 일인지 말이다.  하지만, 목회자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를 잘 섬겨야 한다는 이유로 이런 식의 삥 뜯기가 매우 당연하게 여겨지는 게 한국 교회다. 


반면 나는 정말 신실하고 열심히 성도들을 섬기는 목회자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단 한 명도 넉넉하게 사시는 분이 없다.  정말 가난하고 돈이 없어야 거룩한 목회자의 모습이라 여겨지는 고정관념이 최저 생활비만 받아도 감사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만들었다. 청빈하고 가난한 목사의 모습은 온 교인들이 박수를 치며 치켜세울만한 일이라 여기는 성도들 앞에서 어디 감히 목회자가 돈 얘기를 꺼낼 수 있겠는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하는데도 턱없이 모자란 사례비를 가지고 절절매는 가정을 수없이 봤다.  결국 남편 목사대신 밖에 나가 투잡 쓰리잡을 뛰는 사모들이 남편 목사 뒷바라지를 하고 살림을 하고 애도 돌본다. 그런 환경이 가정을 화목하게 할 수 있겠는가?


돈에 관해서 일반 성도들은 훨씬 높은 교육을 받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만 사실 목회자들은 그럴 기회가 없다. 이것을 매우 맘 아프게 여기는 건 목회자가 돈에 관해서 너무 모르거나 혹은 아주 잘못된 생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돈에 관해서 매우 사기당하기 좋거나 매우 질 나쁜 범죄를 저지르기 딱 좋은 상태가 된다는 건 사실 너무 맘 아픈 일이다. 정말 주님의 일을 온 맘과 마음을 바쳐 일하는 이들에게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교회의 제정 상황에 따라 그럴 수 없는 곳도 많다.  그럴 때는 목회와 다른 직장을 함께 병행해야 할 수 도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 목회자의 결정을 수용해줘야 한다. 그들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목회자도 사회의 일원이기에 세금을 내야 한다.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마대복음 22:15-22)


목회자라고 교인들에게 특별 대우를 바라는 일은 버려라. 일반 성도도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목회자는 부름심 받은 자리라고 말하지만 솔까말 선생도 직장인도 사업자도 과학자도 수학자도 예술가도 다 부르심에 이끌려 서있는 자리다.  하지만, 목회자이기 때문에 일반 성도보다 고생해야 하고 벌어야 하고 물질에서 초월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목회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활을 꾸려야 하고 자식을 돌봐야 한다. 목사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주시겠지라며 손 놓고 있으면 정말 다 해주실까? 하나님은 마법사가 아니다. 


두드리면 열리는게 돈 주머니가 아니고 구하면 얻을 수 있는데 지폐다발이 아니다. 정말 지혜로운 돈 공부는 성실하게 벌고 분수와 상황에 맞는 소비를 하고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며 그 돈이 자랄 수 있게끔 불리는 일, 즉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 공부를 목사도 꼭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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