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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Jan 05. 2023

5.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화가 나서요 (2)



# 착한 며느리 증후군



남편과 어머님을 언쟁을 지켜보면서 마치 나와 어머님이 다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갈등 상황이 나에겐 너무 불편하기만 했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결국 시부모님 댁 문을 박차고 나왔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는 간단히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집 앞에서 조금만 걷다가 들어갈게.'







아기를 안은 채로 시부모님 댁 동네 산책길을 거닐었다. 바깥공기를 쐬면서 걷다 보니 감정이 점차 누그러졌다. 그제야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면 좋을지 고민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3년 차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시부모님이 바라는 싹싹하고 고분고분한 며느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문제인 걸까? 그렇다고 볼 수 없었다.

고분고분한 며느리가 아니라고 해서 문제인 건 아니다.

그럼 내가 망설이고 있는 건 무엇일까?   




'아!!'

그때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시원하게 쳐주는 기분이 들었다.

'아... 내가 시부모님한테 사랑받고 싶어 했네.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했구나!'




3년 동안 시부모님과 항상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의견은 많이 달랐지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가족이 되기 위한 적응기이기도 했고, 세대 간의 관념의 차이도 있었다. 나는 나대로, 시부모님은 시부모님대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노력했다. 어쩌면 마음은 같았을지 모른다.

 '같이 잘 살고 싶은 마음.'




결국은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 혼자 감정을 묵혀 왔었고, 그 기저에는 '내 생각이 맞다.'는 고집이 있었을 것이다. 이 상황이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받지 못하는 관계'가 두려워서 남 탓을 해왔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더 극대화되었다고 생각한 고부갈등의 원인은 시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착한 며느리 증후군'이었던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헛웃음이 났다. 오랫동안 시부모님께 표현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던 이유가 이거였다니. 나의 사랑받고 싶었던 욕구라니.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내 안에서 조금씩 용기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고 싶은 용기였다.








#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화가 나서요.



시부모님 댁 동네를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시어머님께 뭐라고 말씀드릴지 정리한 후, 시뮬레이션까지 여러 번 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부모님 댁 문은 왜 이렇게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가 생각한 대로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다시 아까처럼 싸우게 되면 어하지?  에라 모르겠다!'




띠띠띠띠-

떨리는 손으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 후 문을 열고 들어다. 거실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남편이 빼꼼히 고개를 들고 나의 상태를 살폈다. 어머님은 작은 방문을 열고  나오고 계셨다.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여기에 앉아주세요."

"어?"

조금 놀란 표정의 어머니는 뒷걸음질 치다가 며느리가 '여기요 어머니.' 하며 팔을 잡아끌자 그제야 거실 중앙에 자리 잡고 앉으셨다.  어머니가 먼저 앉으시고 난 뒤에 맞은편에 아기띠를 맨체로 무릎을 꿇으며 앉았다.

어머님은 당황해하는 표정이셨다. 막상 맞닥뜨리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후진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머니, 아까 제가 고개를 절레절레해서 기분 나쁘셨죠? 죄송해요."

"아.. 아니.."

"제가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꾸벅)"



솔직한 멘트에 어머니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이셨다. 고개를 숙이자 거실바닥 위로 내 눈물이 두둑두둑 떨어졌다. 눈물은 났지만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더 용기가 생겼다.




"저도 아이를 낳아보니 어머님, 아버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걱정이 많이 되셨죠?"

"내가 다 너희 좋으라고 하는 거지. 잘못되라고 하는 거겠나?"

"맞아요. 그런데요 어머니."

"???"


본론이 시작되는 타이밍이다. 이상하게도 이 순간부터 의식이 선명해졌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oo이 아빠(남편)가 저희 집 가장이에요. 아이 앞에서만은 나무라지 말아 주세요. 예전부터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었어요."

"......"

"제가 oo이 아빠한테 큰소리치고 많이 뭐라고 할까 봐 걱정하시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저 안 그래요 어머니."



어머님이 고분고분한 며느리를 원하는 이유였다. 여자는 목소리가 크면 남자 기를 죽인다며 염려하셨던 것이다.


어머님과 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바로 뒤 소파에 앉아있는 남편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어머니는 생각이 많아지셨는지 베란다 밖을 내다보시며 한동안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 미안하다."


사과받으려고 드린 말씀은 아니었는데, 막상 미안하다고 하시니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 불편함 때문에 시부모님과의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 계속 미룰 수만은 없었다.


"저희도 이사 갈 집 고를 때 어머님, 아버님께 많이 여쭤보고  알아볼게요.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그날도 시댁에서 저녁을 먹고, 간식도 먹고, 설거지 마무리까지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일정을 마무리했다.  








겉으론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착한 척하는 며느리가 아니었다.


그날의 선택이 우리 관계를 더욱 솔직하게 만들어주었다. 결국 시부모님과의 관계도 인간관계였다. 나를 속이려 할수록 시부모님과 더 멀어졌다. 내가 나를 인정하자 시부모님이 더 이상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혼 8년 차인 지금도 너무도 생각이 다르지만, 우리는 이제 서로 '가족'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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