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착하다', '순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타인의 말에 잘 순응하면서 불편한 내색은 잘 안 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학교선배들이나 직장상사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들었지만, 내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트레스로 몸 이곳저곳이 아프곤 했다. 하지만 이런 성격 덕분에 어딜 가나 예쁨 받았고, 딱히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 관계를 통해 변화가 시작되었다. 바로 시댁이다.
"어머니, 내일 제사인데 몇 시쯤 갈까요?"
"너희 편한 시간에 와."
결혼 초기에는 이것만큼 어려운 대답은 없었다. 차라리 '아침 일찍 와주겠니.'라고 말씀하시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과연 시부모님의 '적당한 시간'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까?라는 고민으로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다음날 볼 일을 보고 오전 11시가 다 되어 시댁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다리를 꼬고 거실에서 퉁명스럽게 내려다보는 시누이의 눈빛을 보았을 때, 알게 되었다.
'아, 오전 11시는 적당한 시간이 아니구나.'
제사에 올릴 음식은 어머님이 다 하셨다. 하나뿐인 며느리는 옆에서 갈팡질팡 부엌만 맴돌고 있었다. 이미 어머니께 '다음 제사 때는 더 일찍 시댁에 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마음이 불편했다.
눈치껏 설거지를 조금 하다가, '이거 할까요?''저거 할까요?' 물어가며 주춤거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일관성 있었다.
"아니다. 내가 할게"
눈치만 주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형국이니, 사회초년생 첫 출근날 보다 더 진땀이 났다. 일을 돕는 것도 안 돕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보다 못한 둘째 시누이가 부엌으로 다가왔다. 냉장고에서 반찬통과 젓가락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이 반찬들 그릇에 담아줘. 그리고 엄마, 차라리 어떻게 해달라고 말을 해."
그랬다. 어머니도 시어머니가 되신 건 처음이셨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여자애가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부엌에서 맴도는 게 어머님께도 어색한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며느리 교육 잘 시켜야 된다고 여러 번 일러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대놓고 일을 시키긴어려우셨던 모양이다.
그날 나는 부엌과 거실사이의 애매한 공간에서 계속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엉거주춤하게 있었다. 제사에 참석한 인원이 늘어나서 한 테이블에서 같이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남자 어른들, 아이들이 함께 먼저 식사를 했다. 어머니와 나 시누이들은 다음 식사차례를 기다렸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부엌과 거실사이에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닥을 보고 있었다.
"야야, 이게 시댁이라는 거데이."
어머니 방식의 위로이셨다. 어머님이 며느리시절 겪어온 경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며느리가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붙이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 순간 가족들은 웃고 있었고,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 드디어 드러난 갈등
한동안 시부모님과 나 사이의 갈등구조가 아슬아슬 줄타기를 했다. 어머니는 갈수록 시크해져 가는 며느리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들에게 화가 나 있었다. 어느 날 이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사건을 만났는데, 바로 이사 문제 였다.
"왜 너네 마음대로 다 정하니? 이사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데."
이사를 계획 중이고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고 부모님께 미리 말씀드려 놓았었다. 하지만 시어머님은 우리가 하는 결정이 못 미더우신 건지, 상의 없이 결과만 알려드리는 게 마음에 안 드신 건지 예민해져 있었다. 이제 막 돌 지난 아기를 데리고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니, 걱정 때문에 잠을 잘 못 이루신다고 했다.
참고로 신혼집을 구할 때는 시부모님과 함께 보러 다녔지만, 부모님의 경제적인 도움 없이 집을 구했다. 결혼 전부터 어머님께서 그 부분을 미안해하셨지만,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결혼은 성인 남녀가 만나 결정한 것이고, 그 책임을 부부가 함께 지는 것이 마땅했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니까.
"엄마, 우리가 결정하게 해 줘."
남편이 한마디 했다. 묵묵하게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가던 그였다. 결혼 전에는 만나기만 하면 하하 호호 웃었던 어머님과 내가, 결혼 후 이렇게 긴장감이 팽팽한 사이가 될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사이에서 제일 괴로웠던 건 바로 남편이었다.
"엄마, 내가 나이가 몇인데 이런 것도 허락 맡고 결정해야 되노?"
"너희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결정하니까 이러는 거지! "
암묵적인 긴장감에 불씨가 붙자 순식간에 타올랐다. 어머니는'올해는 너희가 북쪽으로 이사 가면 안 된다고!'를 반복적으로 언급하셨다. 분명 우리 부부를 걱정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머님의 해결되지 않은 불안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시는 듯했다.
그 모습이 지금까지 묵혀왔던 내 감정들을 자극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곧 내 입 밖으로 무언가가 격하게 튀어나올 것 같았다.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서 참아야 했다.
"하아-!"
할 말이 있지만 참겠다는 의미의 큰 한숨이었다.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비언어적이지만 강력한 표현이었다. 어머니는 나의 반응에 더 흥분하셨다. 아기를 안고 있는 나를 향해서도 손가락질하며 화를 내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어머니와 내가 싸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