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나를 싫어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후회되는 날이 있다면 바로 그날 일 것이다.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요구사항이 많고 짜증을 많이 냈다. 종일 아이를 보느라 식사를 못했던 나의 인내심이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저녁 무렵쯤 갑자기 압력밥솥에서 연기가 빠지듯 감정이 터지고 말았다.
"너 때문에 엄마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었어! 도대체 왜 그래!! 왜에!!!"
결국 4살짜리 조그만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참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난 후에 마주했던 아이의 눈빛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공포에 질린 표정. 엄마와 최대한 멀어져서 얼어붙어 있는 몸.
"......"
아이와 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억압된 감정이 폭발해져 버린 나는 잔불이 가시기 전에 다시 타오를 듯 말 듯한 장작처럼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아이는 나와 최대한 멀어진 거리인 거실 끝에 서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불안해 보였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당시엔 전적으로 육아를 도맡아 하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는 즐거웠던 날보다 무기력한 날이 많았다.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모든 순간에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한 사람일까' 자신을 질책하며 보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는 모습조차도 맘에 들지 않았다.
우연히 책을 읽다가 아이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 마음에 들어야 받을 수 있는 사랑이 아닌 '조건 없이 존재 자체로 받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실은 나도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이었다.
경험해본 적 없는 것을 아이에게 주려고 하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공부해야 했다.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말로 뱉어 보고.. 하지만 노력하고 있는데도 이게 맞는 건지, 왜 자꾸 화가 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몸은 아이와 같이 있어도 영혼은 목적 없이 허공을 떠돌기 일 수였다. 매 순간 아이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생각에 잠겼다. 그럴수록 진심으로 아이와 있는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
'이렇게 밖에 못하다니...'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니 불안했다. 다른 사람에게라도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야 위안이 되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에 가면 좋은 엄마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평소보다 다정하게, 친절하게 아이를 대했다.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다. '척'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것이다.
이후 아이를 데리고 모임에 다녀오면 스스로가 가식적인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꺼리게 되었다.
'난 좋은 엄마가 아닌데.. 사람들과 있을 때 좋은 엄마 인척 해. 나 진짜 싫다.'
# 나도 우리 엄마와 똑같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 '순한 아이'라는 말을 자주 듣던 아이였다. 하지만 타고나기를 민감한 기질이었다. 감각이 민감한 덕에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하며 몇 시간이고 울었다.
관찰력과 표현력이 좋았지만, 그만큼 불편한 것도 잘 느끼는 아이였다. 어머니는 내가 불편한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화를 내며 표현을 못하도록 억압시켰다. (어머니 또한 어릴 적 그렇게 훈육받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감정적인 말들을 쏟아낼 때마다 어린 나는 심한 좌절감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어났다.
왜 이렇게 예민한 거니
왜 이렇게 징징거려서 엄마를 힘들게 하니
왜 이렇게 요구사항이 많아서 엄마 밥도 못 먹게 하니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이 우리 아이도 적당히 순하게 커주길 바라고 있었다.
'나도 우리 엄마랑 똑같네.. 그렇게 엄마를 닮고 싶지 않아서 애썼는데... '
엄마와 닮은 내가 싫다.
어릴 때 엄마가 소리 지르고 때릴 때마다 얼마나 슬퍼하고 억울해했었니.
그런데 내가 똑같이 하고 있다니.
엄마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내가 정말 싫다.
- 그날의 일기-
아이를 재우고 배를 채우기 위해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그날 유부초밥을 먹으면서 펑펑 울었다.
진밥에 대충 소스를 비벼 만들었더니 유부 밖으로 밥알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유부초밥조차도 못생기게 만드는 내가 정말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