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폰 흑백 화면에 두 사람의 얼굴이 비친다. 수유하려던 것을 멈추고 현관문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설레는 표정의 두 분이 냉큼 신발을 벗고 거실로 발걸음을 재촉하신다. 시부모님이시다.
"안녕하세요-"
"어~"
가볍게 인사를 받으며 시선은 온통 생후 한 달 된 갓난아기에게 가있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시부모님 눈을 보고 있으니 미소가 나온다. 손주가 얼마나 예뻐 보이실까.
조리원에 있는 동안 시부모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아이를 보러 오셨다. 표현이 서툴고 무뚝뚝한 경상도 어른들이시지만 손주에 대한 사랑은 감출 길이 없었다. 출산할 때에도 친정엄마보다 먼저 수술실 앞을 지키시던 분은 시어머니 이셨다. 태어나자마자 양수에 뽀얗게 불어있는 아기를 보고 "예쁘다. 예쁘다." 하셨다.
시부모님은 우리 집에서차로 10분 거리에 살고 계셨는데, 아이를 보러 오실 때마다 서로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자리를 급하게 뜨곤 하셨다. 몸조리중인 며느리가 불편해할까 봐 하시는 배려이셨을 것이다.
그날도 오래 계시진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유 먹는 아기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미리 유축해놓은 모유를 젖병에 담았다. 큰 손녀도 직접 키우셨던 어머니는 익숙한 자세로 아이를 안고 젖병을 물리셨다. 조그마한 입으로 꿀꺽꿀꺽 삼키는 모습에 아버님은 허허허 웃으셨다.
"미역국은 많이 먹고 있나?"
어머니는 꽤 진지하셨다. 출산하면 미역국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던 터라 통과의례 같은 질문이었다. 걱정 없는 부모님은 없기에, '네, 매끼마다 먹고 있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하루 세 번으로 안된데이. 네 번, 다섯 번 먹어레이."
며칠 연속 미역국을 먹어서 입만 열면 목구멍에서 미역이 튀어나올 듯했지만, 산모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잘 챙겨 먹고 있었다. 어머님의 강력한 어필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래야 젖이 많이 돈데이."
"......"
'모유', '유축', '미역'
출산 후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이 들었던 단어인가. 엄마가 된 기쁨도 잠시, 하루 24시간 동안 오롯이 아기를 위해 살게 되었다. 두 시간 간격으로 수유하고, 유축하고, 트림시키고 아기가 잠들면 젖병을 씻고, 아기 옷을 세탁했다, 음소거 모드로 밥을 먹다가 작은 부스럭 소리에도 아이가 깨서 울곤 했다.
모유량을 늘리기 위해서 음식을 먹고, 매운맛이 나는 음식은 입도 댈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른들이 '모유'라는 단어를 말씀하실 때마다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산모를 위한 질문은 없을까? '잠은 좀 잤니?' 라던지, '어디 아픈 데는 없어?'와 같은.
수유로 시작해서 수유로 끝났던 그 시기
"모유먹는 얼라가 와이리 작노?"
(모유 먹는 아이인데 왜 이렇게 작니?)
어른들은 때론 정말 궁금해서 이런 질문을 한다. 우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2.6kg의 작은 체구였다. 잘 먹고 건강했지만 체중이 적다는 이유로 양가부모님의 걱정이 태산 같았다. 마음은 이해는 되지만 아이가 작은 것에 '모유'와 연관 짓는 것은 엄마에게 죄책감을 유발할 수 있다.
"잠깐 설거지하고 올게요."
대답 대신 자리를 피했다. 이만하면 완곡하게 불편함을 표현한 것이었다. 조용히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감정을 정리했다.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고. 어쩌면 출산 후 호르몬의 영향으로 내가 감정적으로 예민해졌을지도 모르겠다고. 마음을 진정시켰다.목과 어깨 근육이 뻣뻣하게 뭉치는 기분이 든다.
몇 시간 뒤,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분유를 먹여보는 건 어때? 네가 물젖이어서 애가 작은 거 같은데."
"......"
할 수 있을 만큼 모유를 먹여보겠다고 말해놓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당당한 척했지만 죄책감이 들었다.
정말 어른들 말씀대로 내가 부족해서 아기가 작은 건 아닐까? 모유를 먹인다는 게 내 고집인 걸까?
모유수유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눈물이 소나기처럼 수유쿠션 위로 떨어졌다. 옷소매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눈물 콧물이 범벅되며 끈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