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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Jan 13. 2023

6.엄마의 첫 케이크


# 엄마의 첫 케이크



나의 33번째 생일날이었다.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에는 생일을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다. 덕분에 생일을 일일이 기록하지 않아도 돼서 편리하다. 그런데 그날은 오류였는지 내 생일 알림이 뜨지 않았고, 당연히 지인들은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딱히 나도 생일을 많이 챙기는 편이 아니었기에, 섭섭함은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였다.



따르릉-



"여보세요."

"어 딸~ 엄마 너희 집 근처인데, 케이크 주러 왔어."

"케이크요?"



예상외의 상대였다. 엄마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니.

부모님 이혼 후 두 아이를 혼자 키워낸 건 엄마였다. 새벽부터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만 하셨다. 바쁜 와중에도 내향적인 아들은 마음이 쓰이셨는지 생일상을 꼭 챙겨주셨다. 미역국은 물론이고 잡채, 조기 등 언제부터 준비하신 건지 한상 크게 차려놓고 새벽에 출근하셨다. 아침을 잘 먹지 않던 오빠는 확인만 한 채 한술도 뜨지 않았고, 밥순이었던 나는 그 생일상을 다 먹어치워 버렸다. 오빠의 잘 차려진 생일상을 먹으면서 부러웠는지 울컥하곤 했다. 활발해 보였던 딸은 걱정이 안 되셨나 보다. 생일이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어느 날은 단단히 삐친 내색을 보이자 용돈을 쥐어주며 짜증을 내었다.

'가시나가 아주 그냥.. 도둑이여!'


어릴 땐 엄연히 남아선호사상이라며 속상해했지만, 성인이 된 후로는 잊힌 지 오래였다. 내 생일은 나와 남편, 아이의 소소한 파티날이었고, 그걸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갑자기 내 생일이 생각나셨다니 당혹스러웠다.


"자 여기! 아기랑 촛불케이크 불어래이. 엄마 간다."


케이크만 전달하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엄마가 타고 온 차의 뒷모습과 케이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깊은 슬픔과 우울감. 마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과거의 상처받은 아이가 튀어나와 그 장면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이 케이크를 그때 받았다면 좋았을 텐데.'












#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케이크를 한 손에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왔다. 4살 개구쟁이 아들은 케이크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한 마리의 새끼짐승처럼 포효했다. 투명한 상자 안에 비치는 생크림 케이크 위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들이 먹음직스럽게 올려져 있었다. 흥분한 아이가 케이크 상자를 잡고 뒤흔들었고, 내 손에 있던 상자가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어?!"


지금이라면 깔깔거리고 웃었을 장면이다. 그런데 이미 슬픔에 흥건하게 젖어있었던 나는, 우울감에 더 깊이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옆으로 떨어져 찌그러진 케이크가 감정을 더 자극했다. 급격하게 어두워져 가는 내 표정을 지켜보던 남편이 재빠르게 케이크를 구조(?)해내었다.


"이것 봐! 다 부서진 건 아니야!"


오랫동안 나를 알아온 남편은 눈치가 빨랐다. 박스 안의 케이크를 살살 흔들어가며 원래의 모양과 비슷하게 재건해 내는 기술을 선보였다. 그리고는 흥분한 아이를 진정시키며 값비싼 도자기를 만지듯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꺼내었다.






남편 덕분에 구조된 엄마의 케이크




"생일 축하 합니다 ~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 셋이서 동그랗게 모여 앉아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불렀다.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노래가 끝나면 촛불을 끌 생각에 양팔을 펄럭거리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행복했다. 평범했던 하루에 케이크 하나로 즐거워지는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엄마 덕분에 과거의 상처받았던 마음속 아이까지 함께 만났다.


"여보, 나 엄마한테 케이크 처음 받아봐."

"진짜?"


어린 내가 그토록 원했던 케이크가 33살이 되어 보게 되었다. 지금 나는 너무도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더 이상 엄마가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런데 엄마가 사 온 케이크를 직접 본 순간 마음속 '어린 나'가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날 싫어하진 않았구나.'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어느 날은 남편 탓을, 때로는 자식을 낳은 것을 탓했다. 엄마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커야 했던 우리는, 부모님의 짐이 돼버린 스스로를 미워했다. 그랬다. 나는 내가 싫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생일을 챙겨달라고 보챘었다. 내가 태어난 것이 죄가 아님을 확인받고 싶었다.

어린 내가 엄마에게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딸, 태어난 걸 축하해.

엄마의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네가 있어서 엄마도 행복했어.




그 날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일기장에 쓰자 눈물이 펑펑 났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숨죽이며 웅크리고 있었던 어린 나에게 여러 번 말해주었다.


'생일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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