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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Sep 15. 2023

초보 엄마가 꼭 해야 하는 것

그때의 나를 위하여 2

# 꼭 끊어 낼 거야.

 


아이를 비슷한 시기에 출산하여 친해진 언니가 있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조심스럽게 책을 꺼내 읽고 있던 나를 보고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염쪼, 왜 그렇게 책을 많이 봐?"


 

답을 미리 생각해 둔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내뱉어진 나의 대답에 스스로 놀란 기억이 있다.

 


"해결하지 못한 감정이 많아서요."



아이가 잠들 때마다 항상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젖병을 씻어놓고, 갓난아기의 배냇저고리와 속싸개를 빨아 널어놓고, 밀린 잠도 틈틈이 자야 했다. 그러다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에는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펴냈다.


책 속에 눈을 담는 순간에는 다른 세상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모유와 토자국이 지워지지 않아 얼룩진 수유복, 늘어나고 해져있는 수면양말,  하루종일 반복되는 모빌 기계의 음악소리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육아와 심리학 서적들, 소설, 에세이, 자서전, 자기 계발서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관심이 가는 책들을 빌려와 읽었다. 책을 넘기는 소리에 아이가 울면서 깰 때는 아쉬움이 너무 커 눈물이 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출산 후 찾아온다는 우울감을 책으로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나의 생활방식과 생각 패턴, 감정 습관이 어린 시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아- 너는 애가 왜 그 모양이냐.."

 


 자식들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사용한 표현방식이 우리 남매에게는 '나는 무능력한 인간이야.'라는 무의식을 새기게 만든 듯했다. 종종 하고 싶은 일이 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위축되었다.  


아이라면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쉽게 포기했다. '나는 어차피 안될 거다'라는 강한 신념이었다. 그렇게 점차 감정을 억압하고, 무기력해져 갔다.



"아이고! 다른 집 애들은 잘만 하더만! 내 팔자야!"



어머니는 평일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바쁘셨다. 주말엔 어질러진 집을 청소하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타인과 자신의 삶을 비교해 가며 남편 탓, 자식 탓, 팔자 탓 온갖 이유를 끌어들여 자기 연민했다.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어른이 되면 절대 닮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다짐과 다르게 심리적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주변만 탓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머니를 쏙 빼닮은 내가 싫었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옆에서 책을 펼쳐놓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이 대물림을 꼭 끊어낼 거야.'














#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



쉽지 않았다.


책을 읽는다고, 관련 정보가 많다고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다. 책에서 알려준 방법을 잘하다가도 참다못해 억압된 감정이 폭발하여 이성을 잃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3-4살 밖에 안된 어린아이에게 화를 낸 날 밤이면 스스로가 증오스러워 몸서리쳤다. 부모자격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을 엄마로 둔 아이가 불쌍해 꺼이꺼이 울곤 했다.



'뭐가 문제인거지?'



지금의 오은영 박사님처럼 속 시원하게 해결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야.

'힘들지? 내가 잠깐 볼 테니 바람이라도 쐬고 와.'하고 나를 배려해 주는 어른이 한 명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야.

끌어안고 기대고 펑펑 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

당시 나에게는 그 어떤 훌륭한 육아법보다 지친 마음을 기댈 곳이 필요했다. 심리적 자원이 필요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응원한다고, 품을 기꺼이 내어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이 필요했다.

그렇게 혼자만 싸매어 놓은 슬픈 감정이 버거워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땐 미처 몰랐지만,

지금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칭찬해주고 싶다.


서툴지만 좋은 길을 지키려 했다는 것.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려 하다가도 알아채고 빠져나왔다는 것.  

술을 마신다거나, 과소비를 한다거나, 아이를 체벌한다거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남편 탓을 한다거나

하는 방법을 쓰지 않았다는 것.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면 밤마다 펑펑 울고 다시 책을 잡았다는 것.

실수와 실패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 점을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책은 복리의 효과로 다가왔다.

책이라는 정보와 경험이 축적되면서 나의 감정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상황의 맥락을 보는 눈이 생기고 있었다. 상황이 판단되니 해결책을 구하게 되고, 행동으로 옮겨지면서 자신감을 얻어갔다.


예를 들면 이런 방식이다.




<상황: 육아, 일로 지친 워킹맘>


과거의 나 A :

'다른 사람들처럼 부모님이 지원해 줬다면 나았을 텐데.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다면 편했겠지?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고. 아 너무 힘들다!'


지금의 나 B

'내 욕구 중에 충족되지 못한 건 뭐지? 수면이 불충분했나?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했나? 체력적으로 힘든 건가? 그렇다면 운동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시간은 어떻게 만들까?'




그렇게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행위'가 스스로에게 하는 사랑이었다.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 신기하게도, 내 마음이 충만해지면서 나와 타인을 존중하게 되었다. 진심으로 주변 사람들이 하는 일이 잘되길 바라게 되었고, 지인의 행복이 나에게도 행복으로 느껴졌다.

삶이 풍요롭고, 사는 것이 재미있어졌다.


언제나 긍정적인 기분만 유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어져온 경험들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 주었다.


나와 주변사람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 그것 아닐까?

나와 주변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




초보 엄마들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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