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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가방과 죄책감

by 염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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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너는 진짜..."


어머니가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쉰다. 그녀의 어두운 낯빛과 실망 어린 표정을 그대로 보고 있자니 땅으로 꺼져버릴 것 같은 위축감에 시선이 방황한다. 고등학교 시절, 한부모 가정이었던 우리 집에서 신학기 가방을 구입하는 일은 어머니에게 부담스러운 과제였다. 사춘기 딸을 위하여 동네가 아닌 시내 한편에 자리한 시장까지 나와주셨지만, 딸이 고른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설명도 없이 연거푸 한숨만 뱉어낸다.

'돈 때문일까?'

떠오르는 이유라곤 그것밖에 없다. 어머니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돈이라고 생각했다. 밤늦게 까지 일하는 이유도,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통신문을 볼 때 급격히 어두워지는 표정도, 맥락 없이 표출되는 분노들도 모두 그 때문이라. 원하는 가방을 사고 싶은 욕구와 어머니의 분노로부터 피하고 싶은 본능이 줄다리기하듯 아슬아슬하다. 눈치껏 적당한 타협점을 찾고 나서야 가방을 들고 안도와 수치심이 뒤섞인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섰다.

다음날, 새로 산 가방을 메고 교실을 드러서자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반가운 기색이다.


"안녕! 가방 샀어? 어!?"


놀란 듯 안경너머 눈동자를 높게 치켜세운다. 친구의 가방과 내 가방이 무척이나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주변아이들의 눈길이 집중되자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K.SWISS가 새겨진 친구의 가방줄과 매우 유사하게 그려진 내 가방의 Y.SWISS. 그것도 앞뒤로 붙어있는 자리. 화끈거리는 얼굴로 아무 말 못 하는 나와 다르게 친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띠로리-'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과 하던 대화를 마저 이어나간다. 친구의 여유로운 대처에 이상하게 더 초라한 마음이 든다. 그 여유로운 태도마저 부러울 뿐이다.

늘 그랬다. 나에게 상대적 가난이란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하는 것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던 시절에 비하면 가난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친구들과 나는 달랐다. 화려하진 않아도 단정한 브랜드의 옷을 입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나는 가질 수 없는 깔끔함이라고 여겼다. 어쩌면 그런 회피가 습관이 되어 친구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에 관심을 갖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K.SWISS를 닮은 Y.SWISS를 고를 때에도 전혀 몰랐으니.


그날 저녁 회사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가방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전화기너머 익숙한 작업장의 기계소리를 뚫고 한숨소리가 들린다.


"하..."

"......"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부모님에게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야기해 봤자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여겼던 걸까, 설명하는 순간에 받게 되는 실망과 의심의 눈초리에 지쳐버린 걸까. 그날도 그랬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면 납득하기 더 쉬웠을 텐데,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단순히 딸의 변덕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혼자 갔다 와."

"......네."


유별나네. 까다롭네... 몇 마디 면박은 들었지만 어찌 되었든 허락은 받았다. 내일은 그 창피함을 다시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안심이 되었다. 됐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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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는 돈과 관련된 대화를 할 때마다 이렇게 싸늘하게 식어가는 공기를 감당해야 했다. 어머니가 묵혀두었던 분노가 표출되는 날에는 마치 내가 태어난 것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곤 했다. 부모님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낙태를 시키려고 했었다는 말씀에 소용돌이치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었다. 그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부모님이 이렇게 힘들어하진 않았을 텐데. 그렇게 무의식 중에 새겨진 자아상은 '부모에게 짐이 되는 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여자의 몸으로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의 절절한 상황이 이해가 된다. 어쩌면 부잣집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이 상황은 벼랑 끝으로 내몰려 썩은 동아줄을 붙들고 있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몸부림쳐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과 몸에 매달린 두 아이를 견디며 버틴 동아줄이 너무 낡아 까마득하게 미래가 예상되지 않는 그 기분.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긴장감이 자식에게 전도되어도 알아채지 못하는 먹먹한 시선.


그 시절 나에게 돈은 '죄책감'이었다. 어머니의 깊은 한숨과 무거운 낯빛을 마주할 때마다 한껏 위축되고는 했다. 실망스러운 표정과 짜증이 묻어 나오는 그녀의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을,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외면했었다. 당시 어머니의 짐이 마치 내 존재를 탓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것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때는 우주처럼 커 보였던 부모님이지만 사실은 모든 게 처음이고 서툴었던 초보였다는 것을,

죄를 혼자 짊어지려다가 지쳐버린 어린 '나' 또한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아프게 성장했기를,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아픔도 토닥여 줄 수 있는 그릇이 생겼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다정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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