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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Jan 13. 2024

나를 인정하는 방법

워킹맘 일지. 1


#만 열심히 사는 거 아니잖아



"아들!!! 양치하자!!!!"



오징어 외계인처럼 방에서 기어 나오는 아들 앞에서 치약 묻은 칫솔을 들고 바라본다. 곧 출근 시간이라 조급하다. 내 마음과 달리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기한 괴물 흉내를 내고 있는 아이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시간이 다 되어가. 엄마 마음이 급해. 얼른 양치하자."

"왜에????? 왜 양치를 해야 되는 건데에에?"

"스스로 양치하지 않으면, 엄마가 한다.. 5! 4! 3!"



'양치를 왜 하냐고? 그걸 몰라서 묻냐! 이 녀석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허벅지를 찌르며 참아내어 본다. 이어 묵언수행을 하듯 조용히 양치를 거행한다. 아이는 거울을 보며 양치를 당하는(?) 자신이 재밌는지 온갖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까르르 웃는다.



급하게 택시를 불러 올라탄다. 출근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서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이지만, 자동차는 한대만 소유하고 있고 남편이 출퇴근용으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아침마다 출근 전, 아이를 택시로 등원시키고 정류장까지 뛰어가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그래도 차 한 대 구입하는 비용보다 적게 들기 때문이다.)



"어머니! 일찍 나오시느라 수고 많으시죠?"

"아니에요~!"



택시를 타고 내릴쯔음,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문 밖으로 미리 마중 나와계셨다. 혹시나 내 출근이 늦어질까 봐 미리 나오셔서 인사해 주셨다. 선생님들도 다 자녀가 있으신데,  이렇게 일찍 출근해서 계시는 걸 알면서 어떻게 나만 열심히 산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 이 시간에 oo이 아침밥도 차려주신다면서요? 매일 밥 먹고 온다던데?"

"아~ oo이가 아침을 꼭 먹고 싶다고 해서요."

"대단하시다!"



연신 '아니에요~' 하면서 손을 내저으며 수고하시라는 인사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어린이집 차량을 이용하기에는 출근 시간과 맞지 않아서 직접 일찍 등원하는 방법을 선택했었다. 선생님들은 그런 마음을 아시는 듯 늘 버선발로 뛰어나오셔서 인사를 받아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마음 한편이 따뜻하다.



'그래,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아들이자. 인정하자.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단 생각은 버리자. 나는 나의  기준으로 어제보다 오늘 더 노력하고

있음을 칭찬하자. 나도 나를 인정해 주자.'



감사하다. 선생님들처럼 나도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만한 일을 하고 있을까? 반성하게 된다.

덕분에 등원 길에 맞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 내가 죽는다면?



운 좋게 버스에 앉을 만한 자리가 있다.

만원 버스에 겨우 몸을 실어 출근하는 날에는 이미 지친 상태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런데 오늘은 앉아서 갈 수 있다니 더욱 기분이 좋다. 양쪽 귀에 에어팟을 꼽는다. 유튜브로 즐겨 듣는 자기 계발 영상을 틀어놓고 창밖에 시선을 둔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가고 있는데, 옆차선에 큰 트럭 한 대가 보인다. 버스와 나란히 순행한다. 이어 함께 코너길을 도는데 무게 탓인지 큰 트럭이 휘청한다. 마치 버스와 부딪힐 것처럼 가까워진 순간이다. 버스 기사님 바로 뒤에 앉아서 있던 나는 트럭과 곧 충돌할 것 같은 예감에 눈을 질끈 감는다.



'윽!!!'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같이 타고 있던 승객들도 놀란 듯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양쪽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있었다. 다행히 버스와 트럭은 충돌하지 않았다. 아주 근소한 간격으로 목숨을 건진 듯했다.

눈을 뜨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화로운 햇빛이 버스 안을 비추고 있었다. 순간 살아 있는 게 생소한 기분마저 든다.  



'다행이야. 종신보험을 들어놔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황당하게도 종신보험이었다. 이 상황에 보험이라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그리고 그렇게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 가족.



누가 들으면 엄청나게 희생적인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정말 희생, 헌신 이런 단어와는 거리가 먼 엄마이자 아내이다. 가족 간의 평화, 독립, 자유, 평등을 추구하지만(단어를 쓰고 나니 노조위원장 같구나), 희생보다는 나의 욕구와 성장을 추구하는 그 한 인간이다. 그래서 되려 이런 간접적인 죽음 직전 체험(?)에서 아쉬움이 없었는지 모른다. '이번생 잘 살았다. 아쉬움은 없다' 하면서.




덕분에 '나'가 아닌 내가 떠난 뒤 남겨진 '가족'들이 먼저 떠올랐던 듯하다.  그 순간 종신보험이란 이런 의미이다. 는 나의 삶에 충실했고 후회는 없지만, 남겨진 가족들이 의 부재를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생계를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갈 일이 없기를 바랐다. 잠시나마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

(필자는 보험 직종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임을 밝힙니다.)





일어나지 않은 죽음 덕분에(?)

앞으로를 더 잘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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