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쪼 Jan 05. 2024

아들이 말했다."엄마, 우리 가난하잖아."


여느 때처럼 아이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밤이었다.

읽고 싶다던 책을 읽고, 소등 후 잠들기 전 마지막 담소를 나누던 중 아이가 포옹을 제안한다.



"엄마, 안아도 돼?"



평소에  '아들, 안아봐도 돼?'라고 묻는 엄마를 따라 아이도 종종 '안아도 돼?''뽀뽀해도 돼?' 묻곤 한다. 답은 언제나 'OK'이지만, 어릴 때부터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어서 했던 방법이다.



"물론이지, 아들.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 행복해~"


 

아이 스스로 행복하다는 말을 할 때 듣는 부모는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말이다.

이제 곧 8살이 된 아들은 작은 체구지만 안고 있으면 제법 따뜻하고 포근하다. 하루의 피곤이 싹 가셔지는 기분마저 든다. 서로에 대한 감사와 행복을 누리고 있는 그 순간, 아이가 말했다.



아들: "가난해도 행복해~"



?????

같은 순간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있던 남편도 놀란 듯했다. 남편이 혼잣말처럼 웅얼웅얼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내가 먼저 입을 떼었다.



"oo 이는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해?"

"응! 우리는 가난해."

"우리가 왜 가난하다고 생각해?"

"평범하잖아. 평범하면 가난한 거야."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나니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까 잠시 고민이 되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이의 의견을 수정하고, 거기에  생각을 입히고 싶은 욕구가 일렁인 것이다.


'우리가 왜 가난해? 우리 정도면 행복한 거야 ~ 겨울엔 따뜻한 물 나오지, 맛있는 것도 사 먹을 수도 있지. 저~  먼 나라에는 하루 한 끼 못 먹어서 굶어 죽는 사람들도 있어.' 하면서 제 발 저린 사람처럼 아이의 말을 단번에 고치고 싶은 그런 욕구였다.



다행히 입이 말을 내뱉지 않고 견뎌주었다.  튀어나오려는 그 말들을 부여잡고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갈지 고민하던 와중에,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럼 가난하지 않은 건 뭐야?"

"부자! 부자는 돈이 많잖아. 부자는 사고 싶은 거 다 살 수 있어."

"아~ 돈이 어느 정도로 많으면 부자라고 생각해?"

"그야.. 나는 모르지 ~"



아이는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다 사지 못하는 이유를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키즈카페 가고 싶어.

저 장난감 가지고 싶어.

엄마가 회사 안 가고 나랑 놀았으면 좋겠어.


이런 자연스러운 욕구를 표현할 때마다 '돈'에 대해 언급했던 기억이 났다. 물론 '비싸서 안돼.' 라던지, '우리가 그럴만한 돈이 없어.' 식의 표현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돈 내에서 필요한 것에 소비해야 한는 설명을 아이 입장에선 '돈 때문에 하지 못한다.'로 이해되었을 수도 있을 법했다.



그보다 아이 입에서 '가난'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부모로서 무척 불편하게 느껴졌다. 우리에게 '가난=고통스러운 것.'라는 무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린 가난하지 않아!' 하고 단칼에 잘라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잠시 눌러 담았다.




아들: " 근데 나는 부자가 될 거야."

나:  "아~ 부자가 되고 싶어?"

아들: "응~ 사고 싶은 거 다 살 수 있잖아."

나: "그래 ~ 그렇구나. oo이가 사고 싶은 게 많구나~ 그럼! 부자 될 수 있지."

아들: "응, 나는 부자가 될 거야."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때의 대화를 다시 상기해 보았다. 아이가 '평범함 = 가난'이라고 표현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만 다시 이야기해 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경제교육에 대해 공부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아이는 잠이 오는 듯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나: "돈이 많든, 적든 행복할 수는 있어. 엄마 생각은 그래."

아들: (작은 목소리로)"응... 그건 그래"



비몽사몽 하며 적당히 대답하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짧은 순간의 대화였지만 많은 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이가 '우리는 가난해.' 할 때 느꼈던 부모로서의 당황스러운 감정.

종종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을 아이에게 들킨 건 아닌가 하며 제 발 저려했다는 것.

아이의 의견에 쉽게 '즉시 수정'해버리고 싶었던 욕구.

경제교육에 대한 틀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도 방정 떨지 않고 잘 버텨준 나의 입에게 감사하다.





 



작가의 이전글 월급 받고 잔소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