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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e 육은주 Sep 15. 2022

일본 이끌기

III-3

짧은 인상 하나     


서울 여의도 더 현대 서울 백화점이 들어선 파크 원 마천루를 지을 당시에, 공사 현장 가림막으로 쇠라의 점묘화 그림, 고흐의 '별 헤는 밤' 등 인상파의 초대형 그림이 공사 기간 내내 붙어 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본이 한창 잘 나갈때 인상파 그림을 일본 부호들이 경매 사상 최고가로 연이어 사들였던 것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기라성같은 명작들을 제치고, 네델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소품인  '진주 귀고리의 소녀'가 최고의 명작 대접을 받는 데에는 그런 연유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의도의 마천루 공사장 가림막에 인상파 그림이 걸리는 것은 별 연유가 없다. 오히려 공사 관계자들이 인상파와 일본의 관계성을 안다면 당장 인상파 그림을 떼고 싶어할 것이다. 일본인들은 미술 사조 인상파를 낳은 것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할만큼, 사실 자포니즘이 인상파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리고 네델란드인들은 영국인들보다 먼저 아무 것도 없던 미 동부 작은 섬에 정착해서 '뉴암스테르담'을 세웠고, 이것이 맨해튼과 뉴욕의 시초이다. 그 네델란드 후손들이 뉴욕 재벌과 상류층에 분포되어 있기 떄문에, 네덜란드의 불세출의 화가 렘브란트나 조용한 가정주의풍 베르메르 그림들이 뉴욕에서 특히 사랑받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금융 허브를 지향하는 서울 여의도에 인상파 그림이 가림막으로 서있을 이유는 별로 없다. 그보다는 우리 단색화가들의 작품들 예컨대 김환기나 박서보의 작품이 걸려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과 브랜드를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또한 아직도 극복 못한 문화적 식민성이고,  일반 대중에 대한 교양 교육, 미술 교육의 부재 탓이다. 일반인들이 국제 사회에서의 일본 미술, 일본 문화 영향력, 재팬 머니의 실력을 널리 알게 된다면, 인상파가 최고인양 인기있는 우리 미술 문화 풍토에 물음표를 던지게 될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 인상파를 낳은 일본,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시작에 어머니 역할을 한 일본, 우리가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일본을 얼추 따라잡아도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아득한 격차가 느껴지는 건축 디자인 분야 등등. 우리나라 미술 시간에는 일본의 어마어마한 비주얼 실력에 대해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이는 분명 편향적 시각이고, 소아적 시각이다. 나중에 세계를 다녀보면서, 유수의 유럽 미술관을 다녀보면서, 자포니즘(Japonism)의 영향을 어렴풋하게나마 실감하면서 드는 생각은 대한민국은 일본의 문화적 실체, 특히 미술 분야 실력에 대해서 큰 착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건강한 자긍심을 갖는데도 오히려 방해가 된다. 세계 속에서 우리 민족의 실체, 실체적 역사, 그리고 일본 식민의 이유와 실력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 있음을 객관적으로 알고, 이를 미래 세대에 교육하는 것은 반일이든, 극일이든, 용일이든 일본은 물론 주변강대국들을 상대해나가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친일- 반일-항일을 넘어 도일로     


뉴욕에서 연수할 때 북한 관련 국제 정치 대학원 수업을 들었는데, 일본 유학생도 몇 있었다. 한일 관계에 대한 토론 중에 한 일본 여자 유학생이 젊은 학생임에도 우익의 생각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어서 내심 놀랐던 적이 있다. 뉴욕 명문대학에서 유학할 만큼 국제화되어 있고, 심지어 국제정치학 전공자라 균형적 시각을 갖고 있을 줄 알았는데, 충격이었다.

몇 년 후 우연히 TV 뉴스를 보니 그녀가 아베 수상의 통역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한국에서 연세여학당을 다녀 한국어에 능통하고 영어도 능통하고, 미국 명문대 석사이니 당연히 자격이 된다. 그러나 그녀의 예를 보아 한국을 잘 아는 지한파들조차 속마음은 다를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극일'은 일본인의 속성을 알면 아주 쉽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보다 '쎼지면' 되는 것이다.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강약약강인 그들의 특성상, 우리가 일본보다 강해지면 일본은 (적어도 겉으로는) 알아서 꼬리내릴 것이다. 일본은 우리가 아직 약하다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각종 망언이나 역사문제 독도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중국보다는 훨씬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일본은 밉더라도 친구가 될 수는 있는 자들이다.      

고대 중세 현대까지 동아시아에는 유구히 국제분업이 계속되어 왔고, 때로는 그것이 전쟁의 형태로 나타나기는 했으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우리가 일본을 이기려면 철저히 현실적,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감정을 배제하고, 절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일본에 대한 진정한 복수는 우리가 가치 우위의 리더십으로 그들을 리드할 수 있을 때이다. 

필자는 한국 국제경영의 미래 가능성, 확장성, 지속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국제 경영에 있어 일본 성공 경험보다 한 단계 나은 한국만의, 한국식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화려한 영광과 몰락(rise and fall)을 살펴보면, 일본은 근대화 시기 이미 국제경영을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주변국에 정탐꾼을 파견하고, 자신의 주변국, 러시아, 조선, 중국 등은 물론 동남아까지 탐험하는 등 대항해의 시대에 동승함으로써 해양성의 전정한 면모를 보여준 시기가 있었다. 

일본은 한반도서 배운 퇴계 철학과 서구에서 배운 근대 문물 시스템을 재빨리 혼합해서 산업화하고, 문화국가로 소프트 파워까지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문화에 근본, 즉 인류 보편적인 value 가 없기 때문에 사무라이 지배층이 군국주의로 변질, 전쟁범죄를 저질렀고, 역사 반성도 없으며,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보여주듯 위기관리능력에서 큰 결함을 보여주고 있다. 2020 올림픽으로 과거 1960년대 도쿄 올림픽의 성공신화를 그대로 이어가려하였으나 코로나 사태를 맞아 큰 적자로 귀결되고만 시대착오적 판단력 등을 보면 일본의 성공 신화에는 이제 한계가 보인다. 


과거의 일본과 미래의 한국


우리나라는 경제 성공과 문화 성공에서 일본의 스텝을 그대로 밟고 있는데, 근본 차이점은 우리는 인류 보편의 근본 value가 있다는 것, 그래서 문화의 깊이와 지속 가능성이 일본보다 훨씬 높고 크다는 것, 거기에 더해 대한민국의 위기 대응력, 변화 탄력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 복수는 잠시 접어두고, 실력으로 복수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실력의 복수는 우리가 일본에 리더십을 가짐으로써 가능하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전까지도 불가능해보였다. 그러나 한류가 인기를 끄는 한, 우리가 일본을 문화적으로 리드하는 한, 일본에 대한 문화적 리더십을 넘어 정치 경제 국제 리더십도 자연스럽게 스며들듯 생겨날 수 있다. 지난 문재인 정권과 아베 정권의 예에서 보듯, 한국도 일본도 모두 변화하는 각자의 실력에 대해 오판하고, 잘못 대응하고 있다. 일본이 아베 정권 당시 반도체 소재 수출금지를 한 것도 일본의 판단 착오이고, 우리가 그에 대해 선동적이고,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도 대응 착오이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우리가 갑이고 일본이 을이 된지 오래인데, 일본 정부는 반도체 소재로 우리를 혼낼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고, 이에 대해 우리가 일본 상품 불매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 또한 명백한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 일본 문화와 일본 여행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산업의 기반이 탄탄한 것은 맞지만, 80년대의 찬란한 전성기에 비하면 일본 문화가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J-pop, 드라마, 영화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최강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조차 웹툰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장르를 만들어낸 한국에 서서히 밀릴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일본이 기울고 있다한들 일본의 소부장, 즉 소재산업과 기초기계산업의 경쟁력, 엔화의 영향력, 금융기술 등은 여전히 탄탄하다.  반면 한국은 정보화 디지털 혁명에 성공한 후 미래 적응력에 타의 추종의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를 상징하는 일본과 '미래'를 상징하는 한국이 하나로 합쳐 협력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더 좋은 그림이고, 중요한 전략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에서 '지금은 한일전'이라는 둥, '한일 무역전쟁'이라는 둥 '죽창을 들고 나서 싸우자'는 둥 반일 감정을 부추겼고, 그리고 이에 기반한 '선동전'이 먹혀들었다. 

한일 양국 다 좋은 지도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본다. 문재인 정권 하에서 특히 한일 관계는 '과거의 일본'과 '미래의 한국'이 서로 싸우는 양상, 둘다 잃는 관계- 루즈-루즈(lose lose)관계였다. 그런데 이는 한일의 공동 노력 여하에 따라 윈-윈(win win)으로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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