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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체대생 Jan 01. 2024

10년간 해온 야구를 그만두기로 했다

1화. 내 이야기의 시작

지금은 운동장보다는 강의실이, 배트와 글러브보다는 맥북이 더 익숙한 20대의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프로야구선수를 바라보던 꿈 많은 학생이었다.




때는 우리나라에 야구 붐을 가져다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8회 동안 당시 아마야구 최강이라 불리던 쿠바 타순을 단 2점으로 막아내던 류현진,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퇴장 명령을 받고 분노하며 미트를 패대기하던 강민호,

국내 최고의 싱커볼러 정대현의 극적인 더블 플레이 유도로 야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확정 짓는 순간.

금메달의 감동에 너무 취했던 아홉 살 한 소년은 그날 이후로 매일 부모님에게 야구선수가 하고 싶다고, 야구부 있는 학교로 전학 보내달라고 졸라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리 쉽게 야구를 시작할 수는 없었다.

외동이었던 나에게 운동을 시킨다는 것은 부모님에게 적지 않을 고민이 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운동선수는 공부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편견 속에,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당시 공부를 좀 했던(?) 내가 운동을 시작하게 되면 학업에 소홀해진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어찌어찌 설득을 받아낸 나는 2009년이 되자마자 무작정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며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 역시 남들이 흔히 말하는 '베이징 키즈' 세대이다.

* 베이징 키즈'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열풍으로 야구를 시작한 당시 초등학교 1~4학년(1998년 ~ 2001년 사이 출생자)들을 말한다.




그토록 바라던 야구를 하게 되니 이 세상 모든 것이 행복했다.

다른 선배가 입던 꾀죄죄한 유니폼을 입어도, 시합에서 야구공 한번 못 만진 채 응원만 하다 집에 돌아와도,

내가 야구선수라는 사실에 거울을 보고 뿌듯해하기 일쑤였다.

2009년 8월 29일, 처음 전학을 와서 야구부에 가입한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렇게 좋아하던 야구였는데,

정확하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2018년, 간절하게 바라던 야구선수의 꿈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변하게 된다.

야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운동을 하는 내내 따라다녔던 팔꿈치와 무릎 통증,

그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만 갔던 다른 친구들과 벌어지는 실력 격차,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육체적, 정신적인 압박감이 은연중에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나는 그 압박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막상 야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는 아쉬움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10년 동안이나 한 건데 엄청 아깝지 않아?" 


처음 야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나도 사람인데,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왔던 꿈이었는데 어떻게 안 아쉬울 수가 있으며, 공들인 시간과 돈이 어떻게 안 아까울 수가 있고, 돌아보면 어떻게 후회 투성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가끔은 (쓸데없는 망상에 불과한)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처음부터 운동하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공부만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대학에서 다른 꿈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지금 개발한답시고 끄적이는 게 장난에 불과한 실력 좋은 개발자로 이미 성장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만약 그때 내가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야구를 "간절히 바라왔지만, 이룰 수 없었던 비극의 대상" 그 언저리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 뻔하다.

아마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내 초중고 생활 내내 삐딱선을 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야구를 시작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야구를 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열심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진짜 너는 바쁘게 산다", "너는 어디 내놓아도 뭐든지 뚝딱 잘 해낼 거 같아”, "뭘 하던지 너는 성공할 거야" 같이 나에게 하는 칭찬의 말이 가끔 부담이 될 때도 있다.

내가 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그렇게 바쁘게 살지도, 일을 뚝딱 잘 해내지도, 성공을 장담받지도 못한 그저 평범한 한 명의 대학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10년간 해온 야구도 후회 없이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지 않았던 " 가장 힘들었던 스무 살을 이겨낸 사람이지 않은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없이 겪게 될 많은 선택의 순간에,

이 경험을 잊지 않은 채 주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나이"이자 "나"를 얻게 된 나의 이야기를 앞으로 이어갈 이 글에서 만나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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