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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박 Jun 17. 2024

영속할 수 있는 쾌락을 좇아라

진정한 행복에 대해


100억을 한 번 만에 벌 바에, 1억을 백 번에 걸쳐 버는 게 오래 행복할 수 있다는 통찰



해당 글이 와닿는다. '영원히 행복'하려면 '영원히 쾌락'을 느끼면 된다는 내용이다. 영원히 무언가에 찌들어 중독되라는 식으로 오해하면 큰일 난다. 말의 참된 뜻은 사람은 어차피 원하는 걸 가져도 또 그 이상으로 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행복을 얻으려면 큰 행복보다도 작더라도 꾸준한 행복이 충족되는 게 더 좋다는 것이다.




이 글이 와닿았던 건 사실 내가 이 글에서 작고 소중한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나의 소소한 삶에서 큰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 그저 맨날 카페에 가서 내 관심 분야의 공부를 하고, 주 2회(마음만은 맨날) 격렬한 축구를 하고, 맨날 글을 쓰며 성장을 위한 깨달음을 얻으려는 태도를 가지며 한가하면서도 바쁜 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난 내 삶이 참 잔잔하고 평화롭고 만족스럽다. 물론 이 삶의 양식이 그 어느 열등한 신체적/환경적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는 결코 소소하지 않은 삶일 수 있다. 하지만 평균적인 조건을 가진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사실 무난한 수준의 삶이다.




반복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다 보면 질릴 법도 한데, 나는 정말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만큼 그 고작 책 읽고 공부하고 글 쓰고 축구하는 삶에서 꾸준한 행복을 느낀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이따금씩 내 행복에 대한 의구심도 모순적으로 품었다.




나는 종종 이런 내 행복이 의심스러웠다. 별것도 아닌 것에 너무 쉽고 만만하게 만족감을 느끼는 것만은 아닐지, 이런 한량스러운 삶에 안주하고 행복을 느껴도 되는 것일지 의심스러울 노릇이었다. 고작 이 정도의 만만한 것에 만족과 행복을 느껴서 자존심이라도 상한 것이었을까. 물론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 보면 정말 별 볼일 없는 의심이다. 큰 것이 아닌 적당한 것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삶이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그러다가 우연히 위의 블로그 글을 읽었다.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엄청 끄덕였다. 한동안은 끄덕이고 있었다. '쾌락은 일회성'이라는 교훈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큰 지혜를 남겨두고 갔다.




누구나 쾌락과 행복을 원하지만 그것이 일시적이기만 한 것을 원하진 않을 것이다. 누구나 오래 지속되고 가능한 영원할 수 있는 쾌락을 찾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큰돈을 원하는 게 바로 이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돈을 쓰면 행복하고 계속 행복하려면 계속 돈을 써야 하니, 오랜 행복을 위해서라면 큰돈이 있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큰 꿈을 가진다. 머릿속으로 엄청나게 행복한 자신을 꿈꾼다. 엄청나게 큰돈을 벌고 엄청난 명예를 쥐고 대단한 일을 해내는 그런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평생 크게 만족시켜 줄 것이라 착각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내 삶에서의 참된 행복을 온전히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행복을 의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위의 글을 읽고 나서 의심을 많이 줄이고 안심을 했다. 위의 글은 쾌락에 찌든 내 모습을 상상하게끔 도와주었다. 내가 100억을 벌어보진 못했지만 정말 100억을 한 번에 얻고 쾌락의 기준이 미친 듯이 높아져서 더 이상 쾌락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순간이 오면, 궁극적으로 지금의 내가 가진 참된 행복을 찾고 싶어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쾌락 중에서도, 지금이야 내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몇 년 전의 나였다면 크게 쾌락을 느낄 법한 정도의 쾌락이 존재한다. 미래는 오죽하리? 물질적인 쾌락은 영속될 수 없다.




위 글을 쓴 사람은 나와 비슷하게 1. 철학(공부)에 관심이 많고 2. 스포츠를 좋아하며 3.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제공해 주는 이로움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진정으로, 그리고 꾸준하게 쾌락을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건 정신적 활동, 스포츠, 내면의 성장이라 강하게 주장한다. 이 세 가지 예시가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세 가지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맞다고 한들 모두가 쉽게 처음부터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공부는 싫은데요.", "스포츠는 무슨 걷는 것도 힘드러요.", "정신적 활동은 복잡하기만 한데요."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 활동들을 제대로 경험한 후 이것들의 맛을 느껴본 사람들에 한해서는 100%라고 생각한다.




(다른 행복도 당연히 많다. 나는 노이즈 캔슬링하고 음악 듣는 걸 사랑하며, 달콤한 크림이 올라간 라떼에 눈이 돌아가고, 역삼동의 직장인들 과다 분비되는 바쁜 점심시간 길거리도 사랑한다.)




나는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신적 활동에는 1억만큼의 쾌락, 100억만큼의 쾌락 같은 게 없다. 스포츠에도 1억만큼의 쾌락, 100억만큼의 쾌락 같은 게 없다. 내면의 성장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영속할 수 있는 것이며 쾌락의 정도가 들쑥날쑥하지도 않다. 매번 조금씩 성장할 수 있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 어쩌면 20년이나 뒤에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을 지금 깨달은 기분이다. 나는 대단한 성공과 대단한 행복을 기대했는데(그래서 현재의 덜 대단한 행복을 의심), 정작 그 대단한 성공과 대단한 행복을 이미 ‘누렸었던' 사람이 원하는 행복을 지금의 내가 느끼고 있다. 영속할 수 있는 쾌락.




나는 내 삶에서 느낄 수 있었던 행복을 두고 이걸 행복이라 느껴도 되는 걸까 의심을 했지만 그게 진짜 행복인 것이 맞았다. '평생을 이렇게 살고 싶다'고 느낀 게 올바르게 잘 느낀 것이었다. 이게 행복이 아니라면 더 큰 대단한 무언가를 경험해야만이 대단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대단한 경험에서 대단한 행복을 느낀다고 한들 그것이 우리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해 줄 수는 없다. 만족스러운 쾌락의 기준만 높일 뿐이다.




당신에게 지속적인 쾌락을 주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옳다 신뢰하고 있는가?



(2024. 04.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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