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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박 Jun 18. 2024

괴로운 철학

합리적인 행복을 정의하는 과정


철학은 우리 삶에 매우 가깝고도 먼 주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심오하게 생각할 겨를 없이,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근데 나는 겨를이 있든 없든 심오하게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내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그리고 종종 그런 깊은 철학적 고민이 나를 힘들게 한다.




오늘도 '혹성탈출 4'를 보고 나서 삶에 대한 생각으로 잠시 중독되었다. 혹성탈출 4에서는 인간이 거의 멸종한 세상에서 유인원들이 과거의 인간처럼 종족을 꾸리고 수렵을 하며 전쟁을 한다. 그 끝은 당연히 승리한 종족들만의 번영과 발전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유인원들은 전쟁이 난무한 세상에서 가족들과 더 안전하게 살기 위해 집을 더 강하고 튼튼하게 짓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그게 그들의 철학 과정이다. 어떤 종족들에게는 세상을 지배하고 쟁취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겠지만, 어떤 종족들에게는 전쟁과 승리보다 가족들의 안전이 삶의 목적이다.




이렇듯 철학은 주관적이라서 각자의 철학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한다. 어쩌면 자신만의 철학을 생각하지 않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또한 그들만의 철학이다. 철학이 없는 것도 철학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철학 없이 살아가다 미래에 닥칠 철학적 혼란이 두렵다. 그래서 일찍이부터 삶의 방향을 정하고 싶다. 직업, 행복, 사랑, 먹는 음식 등 모든 것에 나만의 판단 기준과 결정 기준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직업을 고민할 때도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정하고 싶다. 사회 초년생이라면 일단 내가 여태 공부하고 배워온 걸 바탕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 결정도 내 가치관, 성향, 적성 등을 최대한 고려한 합리적인 결정이면 좋겠는 바람이 있다. 어차피 나중에 내가 마음이 바뀌어 다른 걸 원할 거라면, 그 미래에 내가 원할 만한 일을 추론해 내고 그 일과 연관된 커리어를 지금부터 쌓는 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당장 많은 돈을 벌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맛있는 떡볶이를 먹는 것이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행복이다. 근데 그 행복도 철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부정이 가능하다. 당장 돈을 버는 게 내 행복이라 말할 수 있지만, 정작 큰돈을 번 재벌 부자들을 보면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었다."라고 말하며 우울증에 시달린다. 돈은 본질적인 행복이 아닌 양, 더 본질적인 행복을 찾아 나선다.




연인을 만나서도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어 행복한 감정을 느끼지만, 사랑 총량의 법칙에 따라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소홀해져 "있을 때 잘해야 한다."라는 뻔한 후회를 시전한다. 맛있는 떡볶이 또한 먹을 때는 너무 행복하지만 맛있으면 몸에 나쁘다는 세상 불변의 법칙에 따라, 맛은 있으나 건강에는 최악이어서 30대가 되어서는 "건강이 최고다." 시전을 한다.




말의 요지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맞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현재 생각하는 행복이 미래의 내가 생각하는 행복과 일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고 답할 수 있어야 나의 행복을 위해 '합리적인 결정'을 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돈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며, 사랑은 가족에게로 가장 많이 향해야 옳은 사랑이라면 가족이 있을 때(늙기 전에) 잘하는 게 진짜 합리적인 결정이며, 건강이 최우선이라면 젊을 때부터 떡볶이 같은 자극적인 음식 대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게 합리적인 결정일 테니까 말이다.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은 결국 나중에 했던 고민을 또다시 고민하는 비효율적인 혼란을 초래한다. 나는 그 혼란이 너무 싫은 거다. '어차피 이렇게' 할 거면 최대한 일찍이 그걸 깨닫고 '일찍이 그렇게' 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게 또 무조건적인 정답이 아니라는 게 참 재밌는 거다. 아니, 괴로운 것이다. 나처럼 미래의 혼란을 두려워하며 의사결정에 신중해지면 그만큼 결정이 늦어진다. 우유부단해지고 매 순간 효율을 의심한다. 덜 신중하되 일찍 결정해서 일찍 후회를 하는 상황이나, 신중하고 뒤늦게 의사결정해서 후회를 안 하는 상황이나 소요 시간은 사실 얼추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아니 어쩌면 후자가 더 느릴 수도 있다. 전자를 대표하는 '맨땅 헤더'가 안 좋은 의미보다는 비교적으로 좋은 의미로 쓰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겠지.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 깊이 고뇌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옳은 철학이라고 여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돈이 좋고, 연인과 질리도록 데이트하는 것도 너무 좋고, 떡볶이도 참 좋다. 이래서 늘 나만의 철학에 대해 확실하게 신념을 가지지 못하고, 내가 싫어하는 '철학 없는 삶으로써 삶'을 살아가고 있다.




더 긴 세월을 살고 더 많은 걸 경험하지 않는 이상 나만의 철학을 쉽게 가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세월적, 경험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나랑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어떤 신념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엿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독서다. 독서를 많이 해야겠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내 생각을 신중히 정립하고 책을 써서, 세상에 나의 철학을 알리고 싶다.




(2024. 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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