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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타박 Jun 18. 2024

좋아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두 단어의 차이


좋아한다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이 더 깊은 마음을 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어느 정도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어느 정도 이상으로 좋아하면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듯하다. 더 좋아하는 걸 그저 '더 좋아'한다고만 표현하기엔 진심이 덜 담기는 것 같으니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겠지.




문득 궁금했다. 그 두 표현이 느낌적으로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뚜렷한 의미적 차이점이 존재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정말 그저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그저 이상으로 좋아하면 사랑한다고 표현하면 되는 것인가? 단순히 호감의 정도에 따라 단어를 구별하여 사용하면 되는 것인가? 이것들이 원래 이렇게 단순하게 구별되는 것이었는지 의심스러웠다.




좋아하는 건 뭐고 사랑하는 건 뭘까.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고작 두 글자지만, 그 고작 두 글자 안에 담긴 본질적 의미의 차이는 결코 고작이 아닐 터. 표현의 차이는 사소하지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차이점에 대해 잘 이해하고 올바른 상황에 더 올바른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것이 진실된 마음이고 투명한 마음이며, 비로소 내 진심이 온전히 표현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대한 명료한 통찰이 필요하다.




인터넷에 이것저것 검색해 봤다. 명확한 답을 찾고 싶었지만, 추상적인 의미의 단어들에서 명확한 차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느낌적이면서 실제적인 차이점을 구별해 낼 수 있었는데,



긍정적인 에너지의 초점이 [ 나에게 vs 상대에게 ]



긍정적인 느낌에 대한 '방향성'이었다.




기본적으로, 좋아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모두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것은 나를 위한 에너지고,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위한 에너지다. 사전적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좋아하는 감정은 나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것이고, 사랑하는 감정을 상대를 더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 좋아할 때 ]

사람(나)    <---  좋은 느낌          대상



[ 사랑할 때 ]

사람(나)          좋은 느낌  --->    대상




좋아한다는 말은 내가 그 대상으로부터 좋은 느낌을 가진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내가' '가지는(TAKE)' 것이다. 내가 대상으로부터 좋은 느낌들을 가짐으로써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감정이다. 내가 달콤한 아이스크림 라떼의 그 달콤한 맛의 느낌을, 좋은 향의 그 향기로운 느낌을, 그녀 얼굴의 그 아름다운 느낌을 그 대상으로부터 내가 가진다. 긍정적인 느낌이 나에게로 오는, 어쩌면 나를 위한 이기적인 감정이다.




반면에 사랑한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이타성을 바탕으로 한다. 사랑한다는 건 내가 그 대상을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무언가를 귀중하게 여긴다는 말의 뉘앙스는 보통 무언가로부터 마음을 받는(유사 TAKE) 느낌보다는 그 무언가에게로 마음을 주는(GIVE) 느낌을 나타내는 경향이 크다. 좋아하는 감정과 반대로 이타적인 감정이며, 나로 하여금 상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감정이다. 무언가를 좋아했을 땐 나와 대상 사이에 발생하는 좋은 느낌이 나를 위하며 나를 향해 흘렀다면, 사랑할 때의 그 느낌은 비교적으로 내가 아닌 상대를 위한 느낌으로써 존재하고 흐른다.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감정의 차이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그 감정을 느낄 때마다 느낌에 집중했다.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감정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느껴지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느껴봤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느껴봤다. 위에서 언급된 대로 나는 무언가를 좋아할수록 그것을 욕심내고 탐내고 있음을 인식했고, 무언가를 사랑할수록 나는 그것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그것을 향해 애절한 감정을 느끼는 걸 인식했다. 욕심이 나면 "내가 이걸 좋아하는구나.", 그 이상으로 마음이 가서 애절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내가 이걸 사랑하는구나."라고 판단했다.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감정을 구별하는 숙련도는 연애를 마음먹기 직전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는 좋아하는 감정보다 사랑하는 감정이 클 때 마음먹어야 한다.




사람의 호감이 처음에는 좋아하는 감정으로 시작된다. 처음 본 그녀의 예쁜 외모가 마음에 들고, 그녀의 착한 마음씨가 마음에 들고, 섬세한 배려가 내 마음에 호감을 쌓는다. 외모, 성격, 행동이라는 조건들로부터 내가 좋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욕심이 난다. 조건이라는 표현에서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 사람 자체보다는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껍데기 같은 조건들이 눈앞에 더 드러나 보이기 마련이다. 그 시기에 내가 좋아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어쩌면 그녀의 조건들이다.




하지만 당연히 건강하고 좋은 마음으로 관계가 발전된다면 그 껍데기에 불과한 조건들은 점점 그 사람 안으로 스며든다. 예전에는 그녀의 겉에 드러난 멋진 조건들이 내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면, 이제는 그 조건들이 그녀 안으로 스며들어 오롯이 그녀라는 존재 자체에게로 나의 애절한 마음이 향하기 시작한다. 비록 조건 대 조건으로 시작된 만남도 온전히 사람 대 사람으로 교류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전까지 그녀의 조건들이 줄곧 그녀를 의미했었다면, 이제 그녀를 의미하는 건 '그녀' 그 자체이다. 그녀 자체로써 나에게 하나의 큰 소중한 보물이 되고, 그녀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여기기 시작한다. 즉,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 외모이기 때문에, 그 성격이기 때문에, 그 행동이기 때문에, 그 조건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애절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기 때문에 애절한 것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외모 조금 변한다고 해서, 몸매 조금 변한다고 해서, 조건 조금 변했다고 해서 상대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면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이었다고 표현할 수 없다. 그건 좋아하는 마음이었을 뿐이다. 변하기 전의 조건을 좋아한 것에 불과하다. 그 좋아하는 감정을 근거로 섣불리 사귄 것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현실에서 많은 남녀가 이런 (좋아하는) 감정 상태로 연인으로써의 관계를 섣불리 약속한다. 연인 사이에서 생기는 대부분의 갈등이 '좋아하는 마음'이 크고 '사랑하는 마음'이 적은 상태로 만남을 시작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상적인 연인의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감정보다는 사랑하는 감정이 큰 상태를 형성해야 한다.




이해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도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만난 적이 있다. 내가 그 사람의 어떤 외적 조건들과 일부 행동거지로부터 좋은 느낌을 가졌다. 근데 좋은 느낌을 가진 그뿐이었다. 의견 차이가 생기면 고집을 세워 내 의견을 중시했고, 상대의 사정이 내 사정에 영향을 미치면 스트레스를 받았고, 맨날 선의를 받기만 하고 베풀 생각은 하지 않으면 그 심보가 고약히 싫었다. 어쩌면 그 사람을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한 셈이다. 하지만 싫어하는 감정을 묵히고 좋아하는 감정만을 염두에 두어 연인으로써의 관계를 약속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는 조건(외모, 몸매)이 부각될 땐 애정행각도 부리면서, 싫어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는 조건(성격차)이 부각될 땐 크고 작은 갈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갈등을 '맞춰가는 시기'라 칭하며 관계 유지를 합리화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적고 좋아하는 마음이 큰 상태로 '맞춰가는 연애'를 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서로에게 만족감을 주었던 그 조건들이 점차 상실되기라도 하거나 일부 변하기라도 한다면 관계는 급속도로 무너진다. 조건의 변화에 따라 좋아하는 마음이 식는 건 당연하고 소홀해지는 건 덤이었으며, 그 관계의 머지않은 끝은 당연스럽게 이별이었다. 둘은 애당초 연인의 관계를 약속하지 말았어야 마땅한 감정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좋아하는 마음도 크고 사랑하는 마음도 큰 사람도 있었다. 그녀만을 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녀가 아프면 뭐라도 챙겨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고, 항상 내 사정보다 상대의 사정을 우선 고려했다. 의견 차이의 조짐이 생길법하면 일찍이 눈치채어 내가 먼저 양보했고, 앞으로도 이렇게만 관계가 유지됐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었다. 챙김 받기보다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 항상 굴뚝같았다. 상대를 몹시 아끼고 사랑했다. 이런 마음이.. 진짜 연인의 관계로 발전해 마땅한 감정 상태라 볼 수 있겠다.




연인의 관계로 발전해 마땅한데, 그 사람과 연인으로 만나진 못했다.



글 쓰다가 괜히 과거가 떠올라서 잠시 눈물을 훔친댜..



... 그냥 여기까지만 쓸래



(2024. 0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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