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보이스피싱 사건
어느 늦은 저녁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어떤 상황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고, 다음 날 가장 이른 시간에 뵙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날 사무실에 찾아온 의뢰인은 퀭한 눈빛으로 초조하게 앉아 있었고 며칠 밤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습니다.
금융범죄에 연루되었고 예금계좌가 동결될 것이라는 금융감독원 한 과장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김 검사의 호통을 듣고 나니 정체불명의 거대 범죄가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검찰 수사관과 금융감독원 직원의 지시에 따르며 하릴없이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쯤 시간이 지났을 무렵 의뢰인의 계좌가 정말로 동결되었습니다.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생각한 의뢰인은 이해할 수 없어 금융감독원 한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한 과장은 상황을 확인하고 연락해 주겠다고 답하였습니다. 그 통화는 한 과장과의 마지막 통화였고, 한 과장과 김 검사, 박 수사관은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본인이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금융감독원 한 과장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계좌로 송금된 돈을 인출해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전달한 것이 수 차례, 그렇게 전달한 돈이 8천여만 원이 되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보이스피싱 범죄의 인출책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저를 찾아온 의뢰인의 경우 아무것도 모르고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속아 돈을 단순히 전달한 것에 불과하니 처벌받지 않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단언컨대 그렇지 않습니다. 무죄를 주장하고 인정받기 매우 어렵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몸통은 해외에 있어 잡기가 매우 어렵고 한국에서 전달책과 인출책의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잡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검찰은 ‘보이스피싱 범죄의 사회적 문제’를 강조하며 형사정책적으로 단순 전달책과 인출책에 대해서도 사기죄의 공범으로서의 책임을 물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원 역시 검찰과 비슷한 취지로 단순 전달책과 인출책에 대해서 사기죄의 공범으로서의 책임을 인정하고 적지 않은 징역형을 선고하고 구속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 대원칙이 잠시 뒤로 물러나 있는 형국입니다.
오늘 저희 사무실에 자신도 모르게 보이스피싱에 속아 인출책의 역할을 한 것 같다는 사건이 또 접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제 전화기에 국외에서 534,600원이 결제되었고 본인구매가 아닐 경우 전화하라는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보이스피싱이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삶을 무너뜨리는 감염병이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재난과도 같습니다.
재난 문자를 발송하는 심정으로, 이 글로 보이스피싱 주의보를 울립니다. 아래에서 설명드리는 사례를 특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서울중앙지검 000 수사관입니다. 금융범죄에 연루되었습니다”
“귀하는 정책지원금 신청대상자입니다. 아래 URL로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엄마, 핸드폰이 고장 나서 카톡 밖에 안되는데 신분증 좀 보내줘”
“배송이 시작되었습니다. 배송조회 http://www.xxx.xxxx”
“[해외결제] 545.000원 결제 완료. 고객센터 080-000-0000”
“[XX은행] 저금리 대환대출 1억까지 가능. 고객센터 080-000-0000”
“[피해접수] 아래 링크로 XXX톡 서비스 장애로 인한 피해 접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