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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철 Jul 28. 2023

변론일기 #2 일상의 무게

#2 충주 권리금 사건

#2 충주 권리금 사건 - 일상의 무게


2016년 늦여름, 꽤 오래전 일이지만 공을 들이고 마음을 썼던 사건이라 그런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을 통해 법률상담 전화가 왔다. 충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젊은 부부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 선고된 판결


법률상담의 요지는 이랬다. 부부는 5년 전 충주에서 자리를 잡고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권리금으로 목돈을 주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부지런하고 성실했던 부부는 금세 자리를 잡았고, 장사도 곧잘 되었다. 단골도 점점 늘어났고 장사에 탄력이 붙은 부부는 밤잠을 줄여가며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까지 하였다. 새롭게 선보인 메뉴에 대한 손님들의 뜨거운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참 즐거웠다.     


문제는 임대차 계약이었다. 임대인은 매년 임대차 계약을 갱신해주기는 하였지만 특별히 부부를 위해서 갱신해주었다기보다는 부부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아 보였다. 부부가 장사하는 동안 특별히 해준 것도 요구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부부가 이제 자리가 좀 잡혔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때, 임대인은 별 다른 이유도 없이 돌연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온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 어디로 가서 어떻게 다시 시작하라는 것인지 눈 앞이 깜깜해졌다. 그렇게 속 앓이를 하던 중 법률상담을 하게 된 것이었다.     


상가임대차보호법과 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 조항. 권리금을 법률 규정으로 명문화하고 이를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보호하는 매우 획기적인 조항이다. 지금에야 많이 알려졌고 여러 법률분쟁을 통해 케이스도 쌓였지만, 위 당시에만 하더라도 막 시행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법 조항이었다.  

   

내용의 요지는 이렇다. 권리금은 영업시설과 비품 등과 관련된 시설권리금, 장기간 영업하며 확보한 고객, 명성, 노하우, 거래처 등 영업권리금, 영업장소가 위치한 장소적 이점 등 바닥권리금을 모두 포함하는데, 임차인이 3기 분의 임차료를 연체하였다는 등 책임 있는 사유가 없다면, 임대인은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을 소개하면 그와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기존의 임차인이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보호하라는 것이다. 물론 임대인은 임차인이 주선하는 새로운 임차인이 보증금과 임차료를 지급할 자력이 없는 등의 경우라면 새로운 임대차계약의 체결을 거절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임대인이 위와 같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이 주선하는 새로운 임차인과의 새로운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하면 이를 권리금 회수에 대한 방해행위로 보고, 임차인에게 그에 상응하는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불안해하는 부부를 진정시키고 위와 같은 법의 취지와 내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부부를 도와 새로운 임차인을 찾고 그 새로운 임차인을 임대인에게 소개하였다. 임대인은 여지 없이 임차인이 소개한 새로운 임차인과의 임대차계약의 체결을 거절하였고, 결국 부부는 임대인을 상대로 권리금 회수 방해를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에 새롭게 시행된 제도의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고 그에 따라 본 손해배상 청구가 부부의 정당한 권리임을 강변하였다. 손해배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권리금 감정에 참여하여 그간 부부의 노력과 그 결실에 대해 호소했다. 부부가 식당에서 보낸 시간과 흘린 땀, 눈물의 무게가 정당하게 달아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 낙엽이 지고 다시 길에 덮인 흰 눈이 녹아내리고 벚꽃이 필 즈음 소송의 결론이 내려졌다. 부부는 임대인으로부터 상당한 손해배상금을 받게 되었고, 이를 밑천으로 또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부부는 여지없이 그 곳에서도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내며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차 밖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니 문득 부부의 순박하고 사람 좋던 웃음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드려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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