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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May 13. 2024

기록 001

 거의 6년여만에 사촌 오빠네를 만났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고 한번 놀러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왜인지 모르게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어서였는지, 관계에 있어서 언제나 뒷걸음질만 치는데도 이번엔 가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만났을 때의 어색함과 뻘쭘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낯을 가리지 않는 사촌 오빠 부부는 열심히 나와 동생에게 팩트 폭력(살이 엄청 쪘다, 인생을 막 살고 있다 등등)을 날렸고 우리는 열심히 얻어 맞았다. 그래도 누군가 내 삶에 관심을 가지고 조언을 해준다는 게 고마웠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이상 나의 삶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온전히 나 홀로 책임져야 하는 삶인 것이다. 

 그간 나는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나를 내팽개쳐두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냥 되는 대로 살아왔다. 힘들고 지치고 무기력했고, 나의 오랜 우울을 핑계이자 도피책으로 삼았다. 우울증은 나에게 분명 해결하기 힘든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핑계로 도망쳐왔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사실 그 누구보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미워하며 살아왔다는 것 또한 부끄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만큼, 나는 타인에게 너그럽지 못했다. 내 삶의 중심은 항상 바깥 어딘가에 있었고 나는 그것을 내 안으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기록을 할 때도 나는 나를 꾸미고 싶어했다. 내 감정을 꾸미고 싶었다. 나는 사실 너무 지쳤고 사실 아무것도 모르겠고 엉망진창인데도 기록의 끝에서는 어떻게든 희망이라든지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걸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슬픔과 우울과 실패감이 정말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럼 그냥 이제 나는 슬프다 까지만 말하려고 한다. 기록하는 순간에라도 지금의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남기고 들여다보고 싶다. 

 실천해보기로 한 작은 규칙들, 간단하게라도 아침 먹기, 일어나면 이불접기, 선크림 바르고 외출하기 등 굉장히 작은 것들이지만 내가 해내지 못하고 살아온 것들에 다시금 도전한다. 나를 돌보기 위한 것들, 나만을 위한 것들. 오늘은 이불을 접기까진 못했지만 토마토를 먹고 출근했다. 하나의 성공에 동그라미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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