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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Aug 26. 2024

나를 쌓아 올리는 시간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를 읽고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마음에 여운이 남은 책은 조승리 작가의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이다.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일단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면서 궁금증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내, 작가분의 시각장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얼핏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쩌면 나는 이미 편견을 가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삶은 어둡고 힘들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웃다가 슬퍼졌다가를 반복했던 것 같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삶은 어쩌면 더 묵직할 수는 있지만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알았다. 누구나 그렇듯이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기도 하는 것이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편견에 쉽게 노출되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서늘해지고 깊은 슬픔에 잠길 때가 있다는 것, 그럼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나의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고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언제나 수많은 핑계를 대며 살아왔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 내가 이걸 못한 것 저것을 못한 것은 전부 다 환경 탓이고 능력 부족 탓이고 나는 계속 이렇게 불행할 거라고 말하고 생각하며 살아온 게 부끄러웠다. 사실 정말로 간절하게 온 힘을 다해 노력했던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보았을 때 할 말이 없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혹은 시작하자마자 실망하고 포기해버린 많은 경험들이 떠올랐다.


 나는 항상 부끄러움이 많다. 몸의 자세도 마음도 항상 움츠러들어 있다. 별론데, 너 못한다 이런 말을 들을까봐 항상 두려웠고 지금도 두렵다. 그래서 무언가를 시작했다가도 자꾸만 그만두게 된다. 아직 다른 사람한테 평가조차 듣지 못했는데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것에 지레 겁을 먹었다. 나부터도 나 자신을 좋게 평가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굳이 평가를 받는 것부터 생각했어야 했을까, 평가에 왜 이렇게 목을 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무언가를 하는 즐거움, 뿌듯함의 마음으로 계속 이어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언제나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서, 그 마음에 짓눌려 혼자 지쳐 나가떨어졌던 경험들이 후회가 되고 부끄럽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조금 엉뚱하게도 그림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지도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고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렸던 건 중학생 시절이 마지막이었다. 중학교 3학년때 CA 활동반에서 만화 <달빛천사>의 그림을 내키는 대로 따라 그리고 활동 결과를 전시하는 기간에 전시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때 "오, 꽤 잘 그렸는데?"라는 말을 듣고 괜히 혼자 기뻤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어차피 따라 그린거네, 뭐."하면서 지나갔고 나에게는 그 말이 더 크게 남았다. 제대로 배운 것도 없고 따라그리기나 해놓고선 뭐가 좋다고, 부끄러웠다.


 그런데 나중에 그림공부의 처음 시작은 다른 사람의 그림을 따라 그려보는 모작이라는 글을 읽었다. 일단 기술적인 측면의 지식을 얻기 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찾아서 따라 그리면서 즐겁게 그려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에세이에서 작가가 탱고를 추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때가 생각났고 부끄러워졌다. 잘하고 못하고가 대체 뭐가 중요했나 싶었다. 그저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열정을 다할 있는지가 중요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늦이 그림독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전문학원에 가서 배우기는 좀 힘든 감이 있어서 인터넷과 책에서 정보를 얻으며 모작을 시작했다. 물론 실력은 엉망진창이라 초반에 스트레스를 또 잔뜩 받긴 했지만 하다보니까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엉망진창인 그림을 조금 덜 엉망진창으로 고치고 또 고치면서 조금씩 예전보다 나은 형태로 만들어가는 게 재밌다. 괜히 주변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칭찬받고 싶어하는 나를 보면 여전히 평가에서 멀어지지 못하네 싶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조금은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정말로 비웃음을 사고 좋지 못한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겠지만, 미리 나를 그런 심판대에 세우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평가보다도 내가 그 결과물을 사랑하는지, 내 온힘을 다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나를 다독여주고 싶다. 얼마나 살아가야 할지 모를 짧고도 긴 인생 속에서 내가 즐거움과 열정으로 임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나의 마음과 시간이 쌓인 것들이 나의 자랑이고 행복이 되고 아주 조금은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과 감동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쓰는 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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