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식품공학 관련 공부를 했지만 전공분야로의 취업이 싶지 않아서
무엇을 업으로 삼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친구가 보험 관련 시험을 보는 아르바이트를 하자고 했다
마침 할 일도 없고 돈도 필요했기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친구도 나도 졸업반인데 취업을 못 하고 있었기에
친구가 아르바이트로 받은 돈으로 공무원 수험서를 1세트 사서 돌려가면서 보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자 했다.
그래서 1세트의 책을 나누어서 보면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은행에 취직이 되었다고 하면서 나머지 책을 모두 나에게 주었다.
아무튼 그 책으로 공부를 해서 시험을 보고 어쩌다 보니 공무원이 되었다.
연예인들에게 어떻게 연예인이 되었냐고 물어보면 친구 오디션 보는 데 따라갔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놀러 간 그 사람은 연예인 되었다는 것처럼
처음 공무원 시험 보자고 한 친구는 지금 전혀 다른 업을 하고 있고
나는 올해로 31년째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던 30년 전 그때도 취업란이 심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해서 백수로 살고 있는 청년백수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기대도 안 했던 막내딸의 취업, 그것도 고향에서의 공직생활은 부모님에게는 크나큰 기쁨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공무원은 갑자기 생기는 불시 근무가 많았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태풍이 불어도, 눈이 와도 계절이 변하는 감성을 느낄 여유도 없이
근무대기조가 되어야 했다.
공무원 초창기에는 아침 조기청소에 주말 당직 근무까지 해야 했고
동사무소 최일선에서 매일매일 상대하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민원인들의 만남도 힘겨웠다.
아무런 준비 없이 어쩌다 공직생활을 하게 된 터이라
하루하루 언제 관두어야 하나, 매일 퇴사를 꿈꾸면서
다닌 것이 벌써 30년의 세월이 앞에 서 있는 늘공이 되었다.
워낙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성격이었던지라
민원실에서 소리 내어 민원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버거워하곤 했는데
30년을 버터 오니
이제는 사람들을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까지 가능해지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해버렸다.
어공으로 또 늘공으로 30년을 지나고 보니 계획적인 준비 없이도
완벽한 선택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삶의 흐름대로 순리에 맞추어 살다 보니
또 그다음에 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힘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 나의 또 다른 부캐는 어쩌다 강사다.
2년에 1번 주기로 이동되는 근무지에서 언제부턴가 계속해서
업무 관련해서 교육의뢰가 들어왔다.
이건 또 뭐지 했지만, 못한다고 한 번도 안 해봤으니 안 하겠다는 말이 안 나왔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매년 2건 정도로 늘어났다.
이 경험이 나비가 되어 나를 또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알 수는 없으나
나는 확신한다.
다음에 내가 달게 될 수많은 어쩌다ㅇㅇ에 단단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