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집
나는 잔치집 딸이었다. 동생이 있어서 막내딸은 아니었지만 거의 막내딸이었다. 아빠와 고모 큰아빠는 북창동에서 고깃집을 하셨는데, 그래서 어렸을 때 아빠에겐 항상 청국장과 고기 냄새가 났다. 초등학생 때 나는 동생과 그 주변의 영어학원을 다녔다. 원어민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으면 좋을 거 같다고 엄마는 집에서 40분 넘게 걸리는 학원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우리 둘을 이끌고 데리고 다녔다. 암튼 엄마가 우리를 데려다주고 집에 먼저 간 날에는 주변에서 일하는 아빠가 우리를 데리러 왔는데 그때마다 명동도 구경시켜 주고 , 엄마 몰래 이것저것 지하상가에서 사주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좋았던 기억은 가게에 갔을 때 고모가 해주신 음식이었다. 고모는 음식을 정말 잘하시는데, 우리가 가면 가게 메뉴에는 없는 음식들을 해주시곤 했다. 공깃밥도 먹고 싶은 만큼 꺼내먹고 고기도 구워주셨다. 항상 가면 나와 동생은 고모 큰아빠. 일하시는 이모님, 아빠 친구들에게 환영받았고 용돈도 받았다. 그렇게 밥을 배불리 먹고 나면 가게 2층 다락방 같은 곳에서 가게가 끝날 때까지 아빠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왔다. 무척이나 안전하고 따뜻했다는 느낌은 흐릿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
겁
예전부터 엄마는 겁이 많은 나를 걱정했다. 초등학생 때 다녔던 원어민 선생님이 있던 영어 학원에서 처음으로 시험 같은 걸 보는 날 나는 들어가자마자 울었다. 데스크선생님과 엄마가 바로 호출되었고 엄마는 선생님에게 영어로 내가 왜 우는지 설명했다. 그때 왜 울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저 내가 잘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거 같다. 그리고 시험을 망치는 나 자신을 상상하면 겁이 났다. 그렇다고 내가 잘못하는 애는 아니었다. 걱정하는 만큼 열심히 준비했고 나름 잘 다녔던 기억이 난다. 일단 겁을 먹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엄청 대비하고 노력하는 애였다. 성인이 된 지금도 겁이 나는 상황이 오면 초등학생 때처럼 엉엉 울진 못하지만 마음속으로 엉엉 울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비하며 살아간다. 이젠 내가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겁먹지 않은 척할 필요가 없었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