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 교수는 아직도 비대면 수업으로 수업을 진행할까. 교수는 개강 후 3주 동안만 대면 수업을 하고, 그 후 종강할 때까지 모든 수업을 비대면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국민 대다수가 백신 접종을 끝내고, 코로나 감염병 등급이 4급으로 내려가고, 사회적 거리두기 폐지를 비롯한 각종 코로나 관련 정부 정책이 전부 ‘포스트 코로나’를 향해 있다. 그런데 여전히 전국의 많은 대학에서는 비대면 수업을 없애지 않고 그 불씨를 살려두고 있다.
비대면 수업은 누구나 알다시피 코로나 재난 상황으로 갑자기 등장했다. 대면 수업을 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불가피하게 등장한 게 바로 비대면 수업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만일 코로나가 종식된다면, 비대면 수업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좌우뇌가 하나씩만 있다면, 누구나 그다음 순서를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 당연히 비대면 수업도 함께 종식되어야 한다. 코로나 종식으로 비대면 수업의 존립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엔 구차하게 설명을 덧붙일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내 국제무역학 교수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교수들은 여전히 비대면 수업을 고집하고 있다. 지성인 반열 최전선에 있는 그들이 설마 저 간단한 논리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면 혹시 우리가 모르는 비대면 수업의 어떤 숨어있는 진가라도 알고 있는 걸까? 그들은 왜 비대면 수업을 멈추지 않는 걸까?
우선 그들은 비대면 수업의 진가를 여전히 찾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비대면 수업은 대면 수업과 비교하여 학습 효율적인 측면에서 월등히 떨어진다. 혹자는 비대면 수업을 찬성하는 학습자 비율이 이렇게나 높다며, 통계자료 하나를 떡하니 들이밀 수도 있겠다. 물론 이 통계는 신뢰할 수 없는 찌라시에 불과하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을 긍정했을 때 과연 그게 학습효율적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단순히 몸의 편안함 때문에 그랬을까. 답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렇듯 비대면 수업에 대한 학습자의 찬·반은 신뢰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습자의 쾌락적 기호가 아니라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실제적 결과, 즉 학업성취도이다.
그렇다면 비대면 수업이 보편화되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어떤 변화를 보였을까? 당시 뉴스, 신문에서 호들갑을 떨며 보도한 대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전반적으로 크게 떨어졌다. 또한 상위권 하위권의 성적 양극화가 눈에 띄게 심화되었다. 비대면 수업의 부정적 효과에 관해선 따로 통계나 논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학교에서 학생 절반은 비대면, 나머지 절반은 대면 수업을 받게 한다면 귀하의 자녀는 어느 쪽에 속하길 바라는가?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다.
오전 12시, 국제무역 비대면 수업을 빈 강의실에서 들었다. 이 강의실은 개강하고 3주 동안 국제무역 교수가 강의했던 공간이다. 그리고 4주째 되는 날부터는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어서 빈 강의실이 되었다. 교수에 따르면 비대면 수업을 해야 성적을 잘 줄 수 있고, 학생들 입장에서 과외받듯 수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비대면으로 전환을 했다고 한다. 뭐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파자마를 입고 편하게 수업하면 수업도 잘 되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테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국제무역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다른 수업의 교수가 들어온다. 나는 그 수업도 들어야 하기 때문에 국제무역 수업이 비록 비대면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는다. 강의실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이 많다. 많은 경우 나처럼 같은 강의실에서 연이은 수업을 듣기 위해 왔고, 그게 아니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근처 강의실에서 시작되는 다른 강의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강의실을 찾는다.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맞춰 태블릿, 노트북으로 비대면 수업에 접속한다. 교수 없는 빈 강의실에 수업을 듣겠다며 모인 학생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수업이 시작되고 여러 개의 전자기기에서 동시에 국제무역 교수 얼굴이 떠오른다. 교수가 기지개라도 한번 피면, 강의실 안 모든 전자기기에서는 기지개를 피는 교수가 송출된다. 마치 여러 개의 거울로 한 사람을 비추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각자의 액정화면을 참을성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수업이 시작되고 얼마 후 고개를 돌려 강의실을 훑어본다. 학우들은 여전히 같은 화면의 수업을 보고 있다.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다면 이 기괴한 모습에 아마 놀라자빠질 것이다.
강의실에 모여, 각자의 전자기기로, 같은 수업을, 따로따로 듣다니.
과거의 눈으로 이해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학생들은 슬슬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누군가와 카톡을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주뼛주뼛하지만 점점 동작이 과감해지고 거침없어진다. 저기 저 옆에는 벌써부터 엎드려 잠을 청한다. 나 역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넘겨 들었다.
이렇듯 명분도 없고, 학습효율적인 측면에서 최악이라 할 수 있는 비대면 수업을 교수들은 왜 고집하고 있는 걸까. 정적이고도 삭막한 비대면 수업은 물 없는 사막과 비슷하다. 코로나의 잔재 중 청산되어야 할 최우선은 비대면 수업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