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김영하 작가 강연 날이다. 집에서 15분 거리의 롯데백화점에서 열린다고 하고 강연료도 2만 원밖에 하지 않아 신청했다. 그런데 강연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강연을 주최하는 롯데 측은 나에게(또는 참석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강연 도중 사진 촬영이 불가, 강연이 끝나고 사진 촬영, 책 싸인, 간단한 악수 치레 같은 이벤트가 일제 허용되지 않는다는 문자였다. 물론 고분고분하게 그 말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마는 공식적으로 이것저것 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또한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도 거의 없단다. 서비스가 불충분하다고 느꼈다. 이게 무슨 구청에서 예산을 쥐어짜서 열리는 저예산 강연도 아니고 그래도 명색이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강연이지 않은가. 어쨌거나 나는 소액이긴 하지만 치킨 한 마리 값은 지불했다. 그런데 입 닥치고 가만히 앉아서 강연만 듣고 조용히 꺼지라고 하니 썩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김영하 작가를 탓하는 건 아니다. 김영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저 야박하게 구는 롯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뿐이다. 부자가 더 한다더니, 그 말을 굳이 나에게 입증해 볼 필요가 있었을까. 어쨌든 이렇게 롯데는 강연에 대한 기대치를 월등히 낮춤으로써 들뜬 나를 문자 한 번으로 조용히 진정시켜 주었다.
강연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어서였을까. 장소가 집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늦었다. 도착했을 때 강연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주뼛주뼛 자리를 잡고 강연장을 둘러보니 70년대 콩나물 버스가 자연히 떠올랐다. 주어진 공간에 최대한의 인원을 수용한 듯한,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 극대화에 있다는 주장에 손을 번쩍 들어주는 광경이었다. 옆 사람이 마음먹고 코에 힘을 팍 주면, 콧바람이 나에게도 닿을 것 같은 거리였다. 만약 김영하가 회초리를 들고, 여기 앉은 모든 참석자에게 똑같은 교복을 입힌다면 어렵지 않게 30년 전 학교 교실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롯데가 지향하는 최우선의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엿볼 수 있었다.
강연 내용은 훌륭했다. 강연을 굳이 비유한다면, ‘아스팔트 틈새에 핀 꽃’ 정도가 될 것이다. 누구나 아스팔트 틈새에 피어난 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롯데의 역할은 아스팔트, 꽃은 김영하였다. 롯데가 마련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김영하는 아랑곳 않고 꿋꿋하게 강연을 이어나갔다. 한 번의 멈춤, 한 번의 당황함이 없었다. 그는 고속도로로 안전 주행을 하듯, 샛길로 빠지지 않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했다. 중간중간에 샛길로 빠지는 듯한 순간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궁극에는 원래의 주제로 귀결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이야기의 방랑이 아닌,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의도적인 밑그림이었다. 주제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밑그림은 시간이 지나 뚜렷한 메시지를 발했고, 그것은 강연의 주제와 합치했다. 강연을 한두 번 해서는 저런 자연스러움이 나올 수 없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그만큼 강연은 자연스러웠고, 언변은 화려했다. 분명 본인도 열악함을 느꼈을 텐데 역시 프로는 프로였다. 강연 주제는 “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였다. 강연은 만족스러웠다.
아니, 강연 내용만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