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torius eximius
저번주 충청북도 영동군 민주지산에서 독특하게생긴 그물버섯류를 발견하였다. 나는 그물버섯류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 동정을 할때마다 부끄러움을 종종 느끼곤 하지만, 이날 만난 그물버섯은 워낙 독특한 생김새를 갖고 있어 단번에 은빛쓴맛그물버섯임을 알 수 있었다. 은빛쓴맛그물버섯은 여러가지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쓴맛그물버섯속(=Tylopilus)의 포자무늬 색깔을 갖고있으며, 껄껄이그물버섯(=Leccinum)처럼 거친 무늬의 대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아리송한 버섯은 실제로 쓴맛그물버섯으로도, 껄껄이그물버섯으로도 분류된적이 있었다. 국내에서 이 버섯을 분류했을 때는 쓴맛그물버섯속(=Tylopilus)에 해당됐었는지, 은빛쓴맛그물버섯이라는 국명을 갖게 되었다. 이 버섯은 2012년 분자계통분류를 통해서 쓴맛그물버섯이나 껄껄이그물버섯과는 다른 계통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게 은빛쓴맛그물버섯은 Sutorius라는 속명을 갖게 되었다.
학명 Sutorius eximius를 살펴보면, 속명 Sutorius는 Sutor라는 라틴어에(-ius)라는 접미사가 붙은 구조인데, 여기서 Sutor는 라틴어로 구두장이를 뜻하고, 종소명 eximius는 우수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도대체 이 버섯이 구두장이와 무슨 연관이 있길래 구두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된걸까?그 이유는 이 버섯을 처음 기술한 미국의 진균학자, Chales Christopher Frost(1805~1880)에게 있다. 찰스 C. 프로스트의 인생을 요약하자면, 15살 때 선생님에게 자로 맞고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이때부터 구두장이였던 아버지의 사업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연과학에 흥미가 있었던 찰스 C 프로스트는 식물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끼와 지의류를 연구하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Bolete, 즉 그물버섯류를 연구하였다. 그의 그물버섯 연구에는 Boletus robustus라는 종을 기술한 성과도 있었는데, 이 버섯이 바로 현재 은빛쓴맛그물버섯(=Sutorius eximius)으로 분류되는 종이다. 즉, 찰스 C. 프로스트 라는 균학자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학명인 셈이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은빛'쓴맛'그물버섯이니까 다른 쓴맛그물버섯류 처럼 조직에서 굉장한 쓴맛이 날 줄 알았다. 이 특징을 통해 다소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에, 같은 실험실 선배한테 버섯을 살짝 뜯어서 혀에 대보라고 했다.(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겠다만, 몇몇 그물버섯종류는 조직을 혀에 대서 맛을 보는것이 동정 키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을 권장함) 선배는 사무치는 강렬한 쓴맛에 한껏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역정을 낼 줄 알았으나, 아무런 맛이 안난다고 한다. 다소 싱거운 반응에 혹시 선배가 쓴맛이 나도 안나는 척 하는건가 생각이 들었다. 확인 해 보기 위해 나 또한 조직을 살짝 뜯어 혀에 대보았는데, 아무런 쓴맛이 나지 않았다. 이게 뭐람? 이 버섯은 은빛이 나지도 않고, 쓴맛도 나지 않는다.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와 관련도 없으며 제국도 아니었던 신성로마제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버섯이다.
이 버섯을 처음으로 기술한 찰스 C 프로스트는 은빛쓴맛그물버섯에 대해 "초콜릿색이고 육질이 많으며 너무 즙이 많아서 말리고 보존하기 어렵다" 라는 평을 남겼다. 말 그대로 살이 두껍고 통통한것이, 다소 식욕을 떨어뜨리는 색만 제외하면 맛있을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은빛쓴맛그물버섯은 한때 식용으로 여겨 졌다고 한다. 그러나 북동부 북미에서 여러 중독사례가 보고되었으며, 증상으로는 구토, 설사, 메스꺼움 등이 발생한다고 하니, 사람에 따라 위장계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준독성 버섯이라고 보는것이 적당할 듯 하다. 모 버섯 애호가에 의하면, 다른 그물버서 종류에 비해 끈적임이 덜하며, 특별한 향은 없고 다른 그물버섯류와는 다르게 벌레들이 잘 꼬이지 않는다고 한다. 보기에는 사람 여럿 잘 죽이게 생긴 버섯처럼 생겼지만, 식용으로써 많은 매력을 갖고 있는 은빛쓴맛그물버섯. 언젠가 다시 만나면 한번 맛이나 봐야겠다.
2024.08.12
@manta_fung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