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기, 6회기
5회기
선생님께서 내가 그동안 했던 얘기들을 한번 돌이켜봤더니 “여유”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여유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모토이다. 그런데 요즘은 여유가 없어서 힘이 든 것 같다. “정신 없다, 시간 없다. 할 것이 너무 많다. 미치겠다. 힘들다.” 이런 얘기를 정말 많이 하고 산다. 특히 요즘은 더 그렇다. 일의 가짓수도 잘 모르겠는데 (계속 새로운 일이 발생함) 매일매일, 그리고 거의 매 시간을 일을 하며 산다.
게다가 올 해는 아주 다이나믹 했다. 남편은 작년 말에 수술하고 3개월 동안 휴직했고, 휴직 후에 방사선 동위원소 치료도 했다. 나는 승진을 했는데, 좋지만은 않았고 나도 모르게 압박을 받은 것 같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닌데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그 만큼 잘 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입사 8년 만에 팀을 이동했고 원래 하던 업무와 너무나도 다른 업무를 하게 되었다. 업무가 다양해서 모든 것을 빠르게 이해하고, 손에 익혀야 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응용과 개선까지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거기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시작했는지, 하필이면 이렇게 정신 없는 시기에. 그런데 또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행동으로 이끈 것 같다. 아무튼 이 또한 아주 새로운 분야다. 대학 때 심리학은 교양으로 들은 “심리학의 이해”가 전부이고, 그냥 들은 것이라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잘 없었다.
원래 하고 있던 운동도 꾸준히 하려고 했고 책도 꾸준히 읽고 글도 쓰려고 했다.
그러니까 욕심이 과했다.
그렇게 11개월이 지났더니 몸과 정신이 삐걱대고, 그러다보니 몇 가지는 아예 놓아버리게 되었다. 1번으로 책 읽기를 포기했고, 그 다음으로는 운동을 버렸다. 그 동안 나를 이루고 있던 것들을 놓고 나니 생활이 낯설었다. 작년까지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법은 스스로 여유를 찾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나를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 다음 학기에는 반드시 3-4과목만 들을 것이고, 해보다 안 되면 휴학도 할 것이다. 각종 방어기제로 잘도 살아왔는데 왜 요즘 나는 나를 힘들여서 힘들게 하는지, 깨달음이 찾아왔다. 연말에 여행도 갈 것이고 시간 되는대로 연차 휴가도 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6회기
이제 상담 중반이다. 지금 날 힘들게 하는게 무엇인가?에서 출발해서 회사에서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까지 이야기했다.
최근에 나는 회사에서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멋있다고 생각하는 리더나 연장자에 대한 상(image)이 없다. 유능하고 의사결정을 빠르고 정확히 내리고, 책임을 지는 사람을 리더라고 생각하는데 꽤 예전의 부문장님 말고는 한 명도 없다. (그리고 현재 그분이 다른 조직에서 여전히 그러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성 리더에 대한 기대도 특별히 없다.
회사가 아니더라도 그냥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렇다고 당장 때려치고 어딜 가자니 다 비슷할 것 같아서 그냥 있는다. 체념의 마음인가.
나는 스스로 돈은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남편이 일을 하고 있으니까 몇 달은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이후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내가 현재 이렇게 여유가 없는 것은 오히려 미래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어서일 수 있다. 즉, 계획이 없는게 미래에 대한 긴장을 보여주는 걸 수도 있다고 했다. 일정한 계획을 가지고 조금씩 수정하며 살면 현재 삶에 여유가 좀 생길 것 같다고 하셨다. 다음 번에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때도 20대에 대한 기대, 30대, 40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상상이 많이 없던 것 같다. 현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과거를 자꾸만 돌아봤다. 자책은 아니었지만 과거와 현재의 나를 계속 곱씹었고, 미래는 외면했던 것 같다. 불확실하다는 점이 두려웠던 것일까?
내가 이야기하는 회사 일들을 잘 들어주셨다. 주절 주절 한 시간이 흘러갔다.
상담을 하니 좋은 점을 생각해봤다.
그 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한 의견을 말하면서 또 한 번 정리가 된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질문들에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전개되기도 한다. 나 혼자 생각하면 늘 같은 길로 갔는데,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하면 다른 길로, 이 쪽 길 저쪽 길로 가보게 된다. 그래서 하나의 줄기이던 가지가 풍성해진다. 여전히 정답은 모르겠지만, 이 길, 저 길 탐색해보는 느낌이다. 모험가 느낌.
몇 주 전에는 상담 중에 조금 짜증나는 순간들도 있었는데 오늘은 괜찮았다. 그 때의 짜증은 나의 내면을 직면하면서 왔던 거부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보고 싶지 않아서 보지 않으며 살아왔는데, 선생님이 자꾸 질문을 하시니, 내면의 짜증이 올라왔나보다.
+ 그리고 선생님과 이야기해서 앞으로 2회 정도만 더 하고 이번 상담을 마무리 하기로 하였다. 내 개인적 일정도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도 그래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