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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Jun 04. 2020

나를 마주하기

3회기, 4회기

3회기


처음에 왔을 때는 안 그랬는데 눈이 충혈됐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번 달은 특히 바빴다.


회사 이야기.


혹시 여기에 자세히 적으면 지인이 보게 될 지도 모르니까 자세히 적지는 않겠으나 선생님께 나의 팀을 자세히 설명해드렸다. 들으시더니 겹겹이 쌓인 느낌이라고 쉽지 않다고 하셨다.

2-3개월 전에 우울검사 했으면 높게 나왔을 것 같은제 지금은 그냥 살 방법을 알아서 찾은 것 같다고 하셨다. 우울증 척도 검사* 했는데 거의 체크를 한 것이 없었다. 종종 짜증이 나는 정도였다.

* BDI(Beck's Depression Inventory)

선생님은 내가 회사에서 겪은 몇몇 사건들을 말씀드리면 그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물어보셨다. 대답하다보니 주로 내가 느낀 점은 “답답함”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흘려보낸 불통의 시간들이 아까웠다.

또, 일을 책임감 있게 하는 것에 대해,

나는 운동이나 취미는 시작은 쉽게 해도 끈기가 없어서 쉽게 포기하는데 맡은 일들은 포기가 잘 안 된다. 성취감 때문인지, 인정욕구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힘든데도 포기 선언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끙끙 앓았던 적이 많다. 왜 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나의 마음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

원래 집에 오면 회사 스위치가 탁 꺼지는 편인데 이 팀에 와서는 일의 잔상이 남을 때도 있어서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관리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상담 후 집에 와서 생각해 본 것 *


내가 쉽게 포기하는 것에 대하여.
또 일부러 잘 기대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대체 왜 그런 것일까 계속 생각해봤다. 토익학원 한 달 끊어놓고 2번 나가고, 마사지나, 피부관리 이런 것도 마지막 1-2번은 돈을 날리는데도 귀찮아서 안 가고, 일러스트나 피아노, 요가 같은 취미들도 시작은 쉽게 하는데 갑자기 귀찮아지고 관둔다.


관두는 시점이 언제인가 생각해보면 아마 나는 나의 한계가 느껴지면 그만 두었던 것 같다. 귀찮다는 것은 표면적 이유이고 결국엔 성취를 못 할 것 같을 때, 미리 그만둠으로써 나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한테도 그렇다. 타인의 마음을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것을 몇 번의 연애를 통해 느꼈고,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인정한 것 같다. 그리고 이제와서 모든 것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모두를 기대하고 희망차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자기 방어는 조금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오늘도 했다.




4회기


그 동안 여러가지의 심리검사한 결과 이야기를 해 주셨다. 나름대로 정식으로 한 거니까 결과지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다른 곳도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지는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선생님께서 공책에 쓰신 내용을 토대로 엄청 간단히 말해주셨다. 나는 일정 부분 스트레스가 있고, 스스로를 억압, 절제하는 편인 것으로 나왔다. 그게 다였다. 인간이 스트레스야 늘 있는 것 아닌가. 결과를 듣는데 죄송하지만 조금 싱거웠다. 새로울 것 없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이제 심리검사와 상담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냐고 물으셨다. 내가 느끼기에는 설명이 조금 부족했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지를 않아서 아직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지금 억압, 절제를 하며 산다고 해서 사는데 크게 불편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뭘 그렇게 바꾸기까지 해야하나? 인간관계에서 특별히 힘든 점도 없었다. 그리고 이정도 스트레스는 다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말들을 했더니, 표정이 찜찜하게 변하셨다. 선생님이 생각하던 대답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서 말했다. 생각이 지금은 안 난다. 그런데도 계속 물으셨다. 그래서 슬슬 짜증 섞인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의 여러가지 행동들 중에 화를 내거나, 명확하게 나의 의사를 표현해야 할 때, 그럴 때는 화가 많이 나서 그 감정이 날 휩싸고 욱하는 마음에 화만 낼 뿐 의견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물론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내가 분노를 표출하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스스로는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다 하려고 하는 편인데, 아주 부당하거나 관련없지만 않으면. 근데 계속 그렇게 나에게 일을 부여한다는 것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한테 또 일을 투척하는 것인가 싶어서 결국은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좋게 좋게 말해도 될 것을. 화를 다스리며 화를 내지 않고 말하는 법? 이런게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하지만 섵부르게 상담의 목표를 “욱 하지 않기”로 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그렇게 두서없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면서 시간이 1시간이 흘러서 센터를 나오게 되었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검사들을 통해 나를 파악하고 싶었는데, 그게 너무 금방 끝나버렸다. 내가 어떻게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과정도 나를 파악하는 과정이겠거니 생각했다. 10회기의 상담도 벌써 절반 정도가 지났다. 종결 쯤에 가서는 어떤 마음으로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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