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기, 2회기
1회기
MMPI-2(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 Minnesota Multiphaseic Personality Inventory-2) 해온 것을 제출하고, TCI-RS(기질 검사, 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Revised-Short)하나 더 받았다. 한 가지 검사만으로는 알기 어려우니, 종합적으로 보고 알려주신다고 했다.
이번에는 일상을 쭉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 부터.
나의 아침은 7시 알람으로 시작된다. 주말에도 휴일에도, 여행에 가서도 끌 수 없는 알람이다. 왜냐하면 남편이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어야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2018년 겨울에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 그리고 그 즈음에 나는 버스에서 내리다가 이마를 다쳤고,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이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동안은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것 아니야? 보다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 즈음부터 나의 생각이 반전된 느낌이라고 말씀 드렸다.
갑자기 대화는 남편의 수술로 옮겨갔다.
병인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느낌은 어땠는지? 나는 당황했고 남편이 불쌍했고 짠했다. 나만 괜찮아서 미안했다. 방사선 치료 때문에 남편을 차폐실에 두고 나올 때 이야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울컥했다. 울진 않았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선생님을 보니 선생님 눈도 그랬다.
나는 그 일들이 너무 생생한데 남편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오히려 내가 더 내상을 입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그 기억들이 좋은 기억이 아니니까 회피하고 싶을 수 있다고. 그러니 나도 굳이 들춰낼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는 이야기에서 너무 딴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아서 그 다음으로 넘어갔다.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간다.
특히 올해 (2019년)은 새로운 팀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처음에 배타적이라고 생각했던 팀원들은 시간이 갈 수록 편해졌다. 업무의 특성이라고 해야하는지, 날카로움과 예민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오히려 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이 집단에 내가 속해있는 거구나. 팀을 옮겨서 아쉬운 마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상황이 변했구나 자각이 든다.
회사에 어떤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평소에 근태도 안 좋고, 필요할 때 의사소통도 잘 안 되어서 답답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과연 없어도 될까? 그 사람의 역할을 내가 다 해낼 수 있을까? 아마 나는 못 할 것 같은데, 이러한 양가적인 마음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나를 아직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쩌다보이 여러가지를 이야기 하게 되었다. 끝나고 나오니 눈물이 왈칵했던 눈은 개운하고, 왠지 모르게 속이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요가원에 가서 요가를 처음 하고 나왔을 때 느낌이랑 비슷한, 신기한 기분이었다.
2회기
부모님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나보고 절제력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깊어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도 부모님을 많이 생각하고 있고 철이 빨리 든 것 같다고 했다. 부모님과 가족들에게서도 비교적 좋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하셨다.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안쓰러움과 고마움이 있었다. 그런데 애틋함이 없어서인가 눈물은 별로 나지 않았다.
중학교 때 공부하기 싫다고 대들었던 일들에는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으시는 듯 했다. 나의 엄마, 아빠는 자식들을 보호해줘야하는 생각이 컸고, 누구보다 열심히 정직하게 살았다. 돈은 풍족하게 못 벌었어도. 그래서 나에게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결국 부담을 줬던 엄마, 아빠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해왔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엄마, 아빠의 삶이 안쓰러웠지만 그 세월이 대단해서 최대한 존중해주고 싶었다.
나는 선생님께 나의 엄마, 아빠는 아마 내가 엄마 아빠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이런 생각을 하며 살 것이라는 것은 모를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한번도 없다. 언젠가부터 아빠는 아빠의 일 이야기를 잘 안 해주고, 엄마도 아빠가 속상할 수도 있으니까 자세히 물어보지 말라고 하셔서, 그 이후로는 이야기를 잘 안 했다. 그래서 잘 모른다. 아빠는 여전히 일을 하신다. 사람들도 만나시고, 운동도 하신다. 하지만 요즘 삶이 어떤지, 그런 것을 물어보기 어렵다. 아빠가 상처 받을 것 같아서.
선생님은 이제는 터 놓고 마음을 이야기해보면 부모님은 분명 좋아하실 것이라고 했다. 자식들이 잘 자라줘서 고맙고 대견한 마음일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언제쯤 이야기하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따뜻하고 훈훈해졌다.
* 절제와 사랑
그런데 나는 내가 절제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도대체 절제력이 없었다면 그럼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 것인가. 왜냐하면 그래도 마음대로 사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기는 하지만, 남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고 웬만하면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들이 다 절제력에서 나오는 것들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언제 사랑받는다고 느끼는가?
남편이 사온 갑작스러운 타르트나 순대도 그랬지만, 상담을 받은 후에 좀 더 생각을 해봤다.
선생님이 내가 스스로 절제하며 살았다고 하니 드는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이 또한 추측이지만, 상대방이 나를 자유롭게 할 때 사랑이라 느낀다. (그런 것 같았다.)
나의 남편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대부분 수용해주고,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그러지 말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남편은 내가 절제를 할 필요가 없는 존재이다. 아무 말, 아무 행동이나 할 수 있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 자유로움을 느낀다.
내가 예전부터 모나지 않고 꼬이지 않은 사람이 좋았던 이유는 내가 하는 말들과 행동들이 그대로 날아가 꽂히는 것이 생생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날이 선 공격도 그랬지만 공격이 아닌 다른 것들도 똑같았다. 나에게 사랑은 날 향해 오지 않아도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것이 사랑의 모습이었다. 나는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 것 같아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사랑 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존재다. 나도 그렇다.
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많이 궁금하다. 내가 날 잘 알아줘야지, 한 번 뿐인 인생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