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적으로 불안 정도가 높은 편이다. 물 공포증도 있고, 병원은 원래 무섭다. 어느 정도 다들 그렇겠지만, 아마도 스트레스 크기는 다 다를 것 같다.
그 중 물 공포증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물 공포증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물이 몸에 닿는 것부터 무서워하는 정도는 아니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곳에는 절대 못 들어가고, 머리를 물 안에 넣는 것도 큰 용기를 내어야만 가능하다. 아마도 물 자체보다는 질식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배를 타고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너무 무섭다.
그래도 물에서 자유롭고 싶은 욕구는 늘 존재한다. 이게 바로 문제다. 그냥 무서우면 피하면서 살면 되는데, 그 와중에 공포증을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한다는 것.
언젠가 수영에 대해 긴 시간을 검색하고 마음을 먹고, 소규모 수영 강습을 신청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수영은 못 배웠다. 중간에 다른 곳을 다치는 바람에 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 수영은 배우지 못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했다. 바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다. 물에 얼굴을 넣고 숨을 참고, 쉬는 법을 배울 때 남들은 바로 하는데 나는 잠시만요, 잠시만요를 반복하다가 마음을 먹고 겨우 잠수를 했다.
수영 선생님께서 일자로 뜨는 것을 시켰는데 정말 도저히 못 하겠다 싶었다. 내가 주저하니까 선생님이 본인을 믿고 딱 한 번만 발을 떼면서 앞으로 가보라고 했다. 물에 빠지면 내가 꺼내 줄 테니 걱정 말으라는 것과, 내가 하란대로 하면 뜰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수영 선생님 본 지 3번밖에 안 됐는데 선생님을 믿으라고?
어쩌지?
계속 생각했다. 이렇게 그냥 포기하면 또 제자리인데.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벽을 차며 앞으로 갔다. 거의 즉각적으로 내가 뒤뚱거리지만 떠 있더라. 그리고 숨이 찰 때쯤 그전에 배운 대로 다시 물속에 안전하게 섰다. 물속에서 저항을 받으며 떠 있는 것, 엄청나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발차기를 하면서 앞으로 가고, 여기까지 배우고 다치는 바람에 수영 강습은 중단하게 되었고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다시 강습을 받는 것은 미뤄진 상태다.
내가 언제부터 물을 무서워했는지 되돌아보면
초등학교 때 수영강습을 받으면서였다. 운동신경이 좋지 않으니 잘하진 못했더라도 자유형 정도는 얼추 배워서 하던 중이었다. 장난을 친다는 차원에서 수영 선생님이 애들을 물에 던졌다. 발이 안 닿는 깊은 곳이었다. 놀라서 허우적대다가 선생님을 붙잡았다. 그리고 물 밖으로 나왔고 나는 수영 연습을 위해 줄을 서서 한 명씩 물로 뛰어드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다. 내 차례에서 자꾸 뒤로 갔고, 엄마한테 그만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관두고 나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 물 공포증 인간이 되었다.
불안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한다. 그런데 비교적 안전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주변의 위험한 환경 때문보다는 아마도 나와 타인을 믿지 못해서 생기는 것 같다.
불안을 줄이는 것은 무턱대고 한번 믿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를, 나를 못 믿겠다면 누군가를 믿고 발을 떼 보는 것. 아마도 그 한 번의 경험으로 그 이후 삶은 바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여전히 그럴싸한 수영은 못 하지만, 그리고 아직도 잠수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물속에서의 자유로운 느낌을 미세하게나마 안다는 것이 차이가 있다.
심각한 불안과 공포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치료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작은 부분의 불안이나 공포를 벗어던지고 싶다면, 인지의 전환을 통해 한 번 믿어보는 것, 또 그 믿음을 통해 새로운 경험, 내가 걱정해 본 것보다 괜찮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분명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