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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 Dec 29. 2022

우리가 당도할 '낯섦'.

12월의 온기가 이끄는대로_Ep.3

  방에 가득찬 온기는 바깥으로 나를 밀어내었다. 남반구에 속한 뉴질랜드는 12월에 한여름으로 접어드는 중이다. 요즘은 그래도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들여놓는 집이 늘어나고 있지만, 내가 머무는 집에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다. '어떻게 살아' 라고 묻거나 생각한다면, '어떻게 살 만 하다'. 선풍기라도 따로 사서 방에 둘 수야 있겠지만, 스며드는 계절에 있는 그대로 반응하는 나를 관찰하는 것이 퍽 자연스럽다. 그렇게 이번주의 한낮에는 침대 위에서 숨도 가장 작게 쉬며 더위에게 들키지 않으려 했다.

 온기에 눌려 침대에 한 번 누워보려다 당장 내일로 다가온 온라인 캠프의 마지막 점검이 필요했다. 몸은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어도, 종종 온라인으로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성격검사 상담이나 강의를 하곤 한다. 코로나로 인해 살아갈 길이 막히는 듯 하기도 했지만, 살길이 트이기도 했다. 2022년 연말과 2023년 연초에는 2회에 걸쳐 글을 배우고 있는 친구들과 온라인 캠프를 하기로 하였다. 소설, 시, 극작 등 분야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호'라는 공통점 앞에 서서 각자의 느낀 바를 감각하며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지난 괄호캠프, 물음표캠프에 이어 이번에는 '온라인 온점캠프'를 앞두고 있다. 글쓰는 친구들을 자주 마주해서일까, 나도 괜히 텍스트가 가진 사색의 웅덩이에 발을 적셔보곤 한다.

 문앞에 놓인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편편해진 무릎에 노트북을 얹었다. 책상에서 무릎높이로 내려온 노트북에 눈높이를 맞추려다 햇빛에 떠밀려가는 구름을 봐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사진 몇장을 찍은 후에 바람이 차가워질 때까지 끝끝내 머물렀다. 방에 돌아오니 불과 한시간 전까지 방안 가득 존재감을 풍기던 온기는 인사도 없이 떠나있었다. 괜한 아쉬움을 안고 좀전에 찍었던 사진을 스토리에 올리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을 땐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온기를 피해 나온 곳에는 온기의 바람이 있었다. 온기가 밀어냈다고 생각했었는데, 온기가 이끌어낸 곳이었다.

[1] [2]

제목: 12월의 온기가 이끄는대로.


[1]

온기에 밀려 문을 열어보니

마침 저물어가던 해가 온기를 데려갔다.


해는, 스스로 다시 여물어지면  

서서히 찾아오겠노라고.


[2]

유난히 맑은 하루를 마주하며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


구름과 해는 눈을 맞추고 

서로의 동공에 담긴 반짝이는 노을을 본다.  

노을은 반짝이는 사랑과 같아서 

이곳의 나에게 

마지막 찬란한 위로를 건넨다.


마지막일것처럼 찬란했으면서

못이기는척

여러날 여러달 여러해

순간마다 더 찬란하게

눈빛을 건넨다.


아쉬운 표정마저

사랑스럽단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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