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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 Aug 04. 2024

소복이 쌓인 공기 위로 호흡을 내딛는다

그렇게 나를 등 뒤로 하고, 나를 마주한다.

달리기 위해서 마음 수조의 침전물들을 휘 저어본다. 잊혀졌던, 잊혀졌어야 했던, 잊혀진 그것들을 눈앞에 뿌옇게 띄워 본다. 잊어야 할 것을 꺼냈으니, 숨을 크게 뱉으며 집 밖으로 몸을 끄집어낸다. 그렇게 다 끄집어 내고 서야 출발했다.


뿌연 모양새로 호흡을 막아선 침전물이었던 것을, 달리는 바람결에 휘 깎아낸다. 아무도 닿지 않아 소복이 쌓인 공기 위에 호흡을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폐포를 간질인다. 살랑이듯 가슴을 달래는 호흡을 하며 사뿐사뿐 앞으로 나아간다.


들어오는 숨이 묵은 숨을 밀어내고, 묵은 숨이 빠르게 빠져 나가며 새로운 숨을 빨아들인다. 숨이 몸 속 곳곳을 돌며 비워내고 채워지기를 반복 한다. 비워진 곳에 새로운 것이 채워지고, 새롭게 채워진 것은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하고 있으니, 이렇게 달리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의 그릇도 커지나 보다.


보이지 않게 감각하고 추상했던 모든 것들을 뱉어내기 위해 나섰다. 문득 느낀 답답함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쏟아내고 싶은데 쏟아지지 않는,

한껏 기울여도 넘실거리게 하는 것이 고작일 뿐인,

힘껏 던져 깨뜨리려 해도 깨지지 않는.

막막함보다 더 큰 막연함 앞에선 기분이랄까.

무능함 위에 무력함을 올리고, 그 위에 무기력함을 한껏 쌓아 올린 모양새였다.


그런데,

'그런데'라는 표현이 함축하고 있는 비약적인 에너지를 힘껏 지양하지만 그런데, 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런데,

한바탕 달리고 나니, 그것이 원했던대로 왈칵 쏟아지진 않았지만 힘 없이 작아져 있었다.

이리 한없이 작고 약한 것인 줄 알았다면, 그 앞에서 막막 하지 않았을 텐데.

그 앞에 내가 더 작아지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그래도'라는 단어가 가진 보이지 않는 무논리를 피하고 싶기는 하다. 허나 그래도, 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래도 이제는 그만큼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그만큼 울상 짓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 아마 이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빠르게 달리던 생각은, 호흡이 가빠질수록 속도를 늦춘다.

호흡이 달리자, 생각이 걷기 시작하더니 이내 보이지 않는다.

호흡이 생각을 앞지르며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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