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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Feb 12. 2024

결혼기념일을 잘 보내는 방법이 있나요?

결혼은 무엇인가?

명절과 결혼기념일이 겹쳤다.


명절연휴 마지막 날,

많은 이에게 내일은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 날로

오늘은 아쉬운 연휴의 마지막이다.


하지만 나에겐 결혼기념일로

어떻게 해서든 오늘 하루를 잘 보내려면

아내의 마음을 잘 읽고 하루를 소란스럽지 않게 보내는 것이야 말로

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음의 다짐을 해본다.


결혼식을 하던 그날,

설레는 마음으로 평생의 반려자와 함께 한다는 생각과

이제는 나의 분신과 같은 가족으로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휩싸여서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고

바빠도 바쁜지 몰랐던 바로 그날을 떠올리며


“나는 내가 책임지기로 한 아내와 함께 살 것을 약속하고,

온전히 그 사람에게 맞추어 한평생 사랑하며 살 것“을 다짐했던

그 마음가짐을 말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늘 나는 내가 편한 방식으로

내가 정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아내를 흔들었고,

지금도 역시나 아내는 나의 고집을 들어주며

나를 위해 맞춰준다.


참 고마운 일이다.



차례와 시댁, 친정을 오가며

많은 부부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SNS에는 명절을 잘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알고리즘에 뜬다.


제사를 가져오면서 더 이상 차례는 지내지 않기로 했건만

왜 차례를 지낼 준비를 하지 않았냐는

아버지의 완강한 입장에 나는 눈과 귀를 닫기로 했다.


아버지! 저는 당신이 짐 진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저를 믿고 이제껏 살아준 아내, 당신의 며느리를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물론 아버지는 이런 나의 분노한 외침에 끄떡 이 없으시다.

왜? 그냥 그런 분이고, 그저 제 뜻대로 되어야 직성이 편한 성정 때문이다.

자식의 불편함, 어려움은 너희가 극복해야 할 몫일뿐

너희들은 내가 정해놓은 룰을 지키면 될 뿐

더 이상 못하겠다고 징징거리지 말라는

아버지의 태도에 나는 진절머리가 났다.


아내 역시 이런 아버지의 태도와 혀끝에 매달린 날카로운 말에

상처받았고, 이제는 초연해진 모양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불편한 그 무언가가 남아

명절 연휴를 불행하게 보낼 수밖에 없도록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결혼기념일이라니…

자식인 나도 아버지 일로도 힘이 드는데

시아버지의 서슬 퍼런 말을 들으며

어느 며느리가 숨이나 쉽게 쉴 수 있을까?


그래서 한없이 미안하다.




아내는 거실의 화초들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새다.


여인초는 너무 무성한 데다 사람키를 넘어서려 하니

풍수상 좋지 않은 것 아니냐!

몬스테라는 가지치기를 안 해서 잎이 너무 중구난방 자랐고,

드라코는 풀어헤친 머리처럼 산발이다.


나는 원예용 가위를 집어 들고 이렇게 자를까?

이렇게 하면 되겠어? 라며 비위를 맞춰본다.


화초에 분풀이하기보다는

뭔가 정돈되지 않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니

괜히 더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그래서 맞장구를 치며, 화초정리를 했다.


큰 가지를 치고, 정리를 하고 나니

아내가 자질구레한 부분들을 다듬으며 정리한다.


역시나 뒷정리는 아내의 몫!

그래도 아내가 어느 정도 흡족한 모양이다.

얼굴이 편안해졌다.




샌드위치를 사 먹자며 느지막이 나선 길에

아이들을 데리고 걷다 보니

어느새 찬 기운이 얼굴에 닿는다.


아이들에게는 따로 걸어가라고 한 다음

아내와 손깍지를 끼며 한참을 걸었다.


역시나 싫지 않은 기색이다.

남편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고작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며

아내가 원하는 소소한 것들을

해주는 것만이 전부이다.


천금을 줄 수도

누구처럼 명품백을 무리해서 사주기에도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이 들었다.


너와 내가 이 험한 세상 헤쳐나갈 때

실타래가 꼬여 도저히 풀기가 힘들다 할지라도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면 된다는 것은

우리 부부의 모토라면 모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마음을 더 단단히 먹어본다.



근사한 저녁이나 거창한 선물은 없었다.

대신 아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잡채를

맛있게 만들어냈고, 나는 아내의 요리를 거들었다.


약간의 우울감.

말 못 할 답답함이 가슴을 조이는 탓에

소화도 잘 되지 않고 머리도 아프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를 보냈고,

우리의 결혼생활도 그럭저럭 버텨나가고 있다.


언제 좀 나아질까? 싶은 의구심도 들고,

나이가 들면 좀 편안해질까? 싶은 불안감도 들지만,

멀리 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오늘 하루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편안하면 된 것이다.


그렇게 잘 보내면,

또 그럭저럭 괜찮은 시간이 오리라 믿는다.




15년 전 너는 결혼이 뭐라고 생각하냐? 는 친구의 물음이 있었다.


그때는 결혼이 뭔지 잘 몰랐다.


그래서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물론 지금도 결혼이 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건 확실하다.


결혼은 사랑하는 이를 아내라 부르고,

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행하며

끝끝내 그 사람을 책임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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