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디폴트 값을 마이너스로 두어야 한다.
저번에 썼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 우리의 삶은 버티며 살아내는 것‘”의 후속 이야기이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소중한 인연들에게 브런치에서의 활동을 소개했는데
늘 그분들의 응원과 격려에 힘을 얻곤 한다.
사실 이번 글은 그분들을 위한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올해 유독 힘겨운 일들이 이어지는 요즘,
말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겨우 겨우 버티고 있다.
아니.. 겨우 버텨내고 있다.
피부가 타는 듯한 땡볕 더위에 바깥에서의 활동은
정말 최소한으로 하고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일단 지난 두어 달 정도의 증발된 시간을 반추해 보면,
그럭저럭 잘 버티며 지나간 시간들이었다.
[부모의 건강]
장인어른의 신장암 수술이 무사히 진행되었다.
심장이 부어 있어 고혈압으로 자칫 전신마취 중 위험성이 높을 수 있다는 의견에
여러 차례의 정밀검사를 거쳐 진행된 수술이었다.
당초 2시간 남짓 수술이 걸릴 거라는 의사의 의견과는 달리
3시간 반이 흘러서야 수술장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암환자들의 수술이 요즘은 크게 어렵지 않은 시대가 되어
의료혜택을 넉넉히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좋은 서비스 뒤에는 그만한 금전적 대가가 필요한 법.ᐟ
수술 이후 몸에 크게 무리가 없는 로봇수술로 진행되다 보니
선택적 진료에 따른 비용부담이 가족에게 넘겨졌다.
보험은 먹고사는 것이 힘들다고
보험을 들었다 해지했다 하다 보니
수술비나 진단비 보장은 없었다.
비용은 1,500만 원 정도였고,
이제 앞으로 한두 달 정도는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운동도 하고
체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한두 달 생계를 이어갈 비용도 필요할 것 같다.
어렴풋이 합산해 보면 대략 2천만 원의 부담이 생길 예정.
세상에서 가장 해결하기 쉬운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빠른 회복력으로 퇴원도 빨라졌다.
하루 만에 포항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포항으로
휴가철이라 그런지 차가 많이 막혀
10시간을 차에 있었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밤이 되니 조명이 눈에 들어오니 빛이 갈라졌다.
난시조정 안경을 썼는데도 빛이 갈라지는 걸 보니
몸이 버티기 힘들구나 싶었다.
수술 이후 빠르게 회복하신 것도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길어지지 않은 병간호에 더 감사했다.
종종 병원에 가기 위해
서울을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자식교육]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학폭위에 회부되어 조사를 받았었다.
쉬는 시간 같은 반 아이와 다른 학급의 아이 간의 감정싸움에
휘말려 같은 반 아이 편을 들다가 다른 학급의 아이에게
신체적인 접촉이 있었고, 이로 인해 해당 부모는
관련된 모든 아이들을 학폭위에 진정을 한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아이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여러 차례 했으며, 그 아이와도 잘 화해를 했다.
하지만, 그의 부모는 무조건적인 처벌을 원했다.
학교장 명의의 사과는 필요하지 않으며
자신은 무조건 교육청에 가서 학폭위 판단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
그 부모의 선택.
결국 교육청에서 학폭위가 열렸고,
아이를 데리고 간 엄마는 눈물로 사과를 대신했다.
아이도 반성을 했고, 그 아이와 잘 지냈겠다고 했다.
물론 그 이후 그 아이와 절대 놀지도 말고 말도 섞지 말라고 다그쳤지만,
여러모로 부모의 대처가 올바른 것인지
그리고 나는 부모로서 모자람이 없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가 잘못을 뉘우치고, 진정성 있게 사과를 했던 점이 받아들여져서인지
교육청에서는 가장 경징계인 1호 처분 “서면사과”를 내렸고,
아이와 엄마는 각각 해당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에게 사과의 편지를 쓰며 일단락되었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고,
아이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준 것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었다.
물론 그 당시 신고를 한 아이는 다친 곳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해당 아이의 부모는 다른 아이들이 내 아이에게 이렇게 했다는 것에
많이 화가 난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담임선생님의 말로는 별거 아닌데 설득이 안된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보셨을 때도 이 정도인데 부모의 인성문제도
교육청 학폭위가 열리는데 한몫했으리라..
그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와 만날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그냥 그런 생각은 들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파도를 치듯 굴곡이 있을 것이고,
서로 간의 입장은 바뀔 일이 많을 것이다.
미래에는 서로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일련의 사태로 몇 달간 숨을 죽이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를 생각하며
먹고 싶어 하는 와플을 사주었다.
아이는 역시 아이다.
기가 죽었을 거라 염려한 것과 달리
천연덕스럽게 잘 먹는 아이에게
웃으며 ‘너 이제 전과자야.ᐟ 알지?’라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응 이제 그런 일 없어. 아빠.
이제 그런데 휘말리지 않을 거야. “라는 말에
잠시 마음이 먹먹했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밖에 모른다고,
너희들은 요즘 개인주의가 강해서
집단에서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는 게 필요해라고 말했던 내 말이 과연 맞았는지 헷갈렸다.
사정도 모르는 채 친구니까 같은 반 아이니까
편을 들고 함께 하는 것을 과연 판단하기가 쉬울까?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
서로 경쟁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에서
타인을 위하거나 조직을 위해서 협력하고 조력한다?
그렇지만 그게 맞는지는 스스로 판단하라?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리고 사법기관도 아닌 교육청에서
사법적인 처벌기능을 수행한다는 것도 못마땅했다.
교육청의 학폭위가 무슨 전문가 집단이라 생각했다가
그 구성을 보고서는 다소 놀랐다.
제출된 서류와 아이들의 진술만으로
몇 명의 위원이 형벌에 가까운 처분을 내리는데
법률을 전공한 사람도 없고, 수사기관에 소속된 사람도 없다.
물론 전직경찰이었던 수사담당관이 계시긴 했으나
증거도 불충분하고 서로의 진술이 엇갈리는데
사안이 중대하다면, 이건 학폭위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해당 부모들은 소위 끝까지 가려고 할 것이다.
현재 공교육 시스템이 무너지게 된 건
제도적인 불비와 과중한 교육청의 업무와
쏟아지는 송사가 한몫하고 있음을 목도했다.
예전에 서로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하던
그리하여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관용의 문화는 사라졌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고대 로마시대에나 나올법한
후진적인 해결방식을
소송과 진정이라는 이름으로
교육현장에서 활용되는 것을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방학이니 이제 선생님들의 역량제고 워크숍에서는
소송대응 과목이 중요할 것이다.
한해 몇백 건의 학폭위 진정이 있고,
선생님들도 소송을 심심치 않게 받는 현실을 보고 들으니
남일이 아님을 느낀다.
[소천하신 큰 이모]
한 집안의 큰 딸로 태어나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 만지며 가족 생계를 책임지셨던 큰 이모가 돌아가셨다.
막내딸인 엄마에겐 엄마 같은 존재.
요양병원에서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셔서
더 마음이 아팠던 큰 이모상이었다.
날이 뜨겁고, 숨이 턱턱 막히는 날,
힘없이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곁에서
아들로서의 도리를 다했다.
조금 더 일찍 찾아뵐걸.
좀 더 건강하실 때 놀러 가서 맛있는 것도 같이 먹을 걸.
등등의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말끔한 한복에 다소곳이 입을 앙 다문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내내
속에서 올라오는 슬픔을 눈물과 함께 토해냈다.
내게도 외할머니 같은 큰 이모였다.
어릴 적 내 팔을 툭툭 치며,
‘니는 엄마한테 잘해야 한다. 니는 엄마한테 잘해야 한다.’며
늘 당부를 잊지 않으며 손에 만 원짜리를 한 장씩 쥐어주시곤 했다.
딸과 같은 막냇동생을 위하는
언니의 마음이었으리라.
어린 시절, 나는 그렇게 내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해
늘 이런 식으로 교육받았다.
그것이 본가든 외가든 처가든.
시간을 내어 큰 이모의 곁을 지켜
결국 엄마의 면을 세워드렸고,
장성한 아들이 할 수 있는 효도는
겨우 이 정도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실천은 늘 어렵고, 마음을 내기는 더더욱 어렵다.
피곤한 시간들이었지만, 해야 할 일을 했고,
잘 해냈다. 그걸로 족하다.
[블로그와 브런치]
블로그는 한동안 하질 못했다.
힘들었고, 피곤했고, 여유가 없었다.
남의 글을 대충 읽을 짬은 있었으나
정작 내 글을 대충이라도 쓸 짬이나 여유는 없었다.
겸직금지 뭐니 따지고 드는 인간이 있으면,
그러든가 말든가 난 모르겠고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정신적인 에너지의 고갈
육체적인 에너지의 고갈
일부러 기억해내지 않는다면,
증발되어 버리고 말 시간들이었다.
과로는 업무나 해야 할 일이 과중해서 피곤한 상태이며
이는 일을 하지 않는 휴식과 여행, 쉼으로 해결이 된다.
그러나 번아웃은 정신적인 보상이 없음에도
일상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 누적될 때
정신적인 에너지가 고갈됨으로써 나타나는 상태이다.
나에게 과로와 번아웃은 동시에 왔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생에서의 본업 이외의 것들은
잠시 손에서 놓는 일이었다.
그럼으로써 정신적 육체적 쉼을 얻었고,
대신 의식의 흐름대로 살아가는
아니 살아지는 삶으로 과로를 피했다.
하지만 지금 정신적인 보상이 없는 번아웃은
나름대로 극복해려고 하지만, 의욕이 생기지 않는 상태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행복한 일은
매일 일어나지 않으며,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불행한 일들은
시간을 다퉈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크고 작은 일에서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으나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다시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삶의 디폴트 값을 마이너스로 두기로 마음먹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잠시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0’의 상태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아래의 사진은 서울에서 포항에 내려오던 중
소변기에 붙어있던 문구였다.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다.
인생의 성공은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며,
그 성공은 ‘끊임없이 지속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곧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다.
현재 나의 힘듦을 불필요할 정도로 세세하게 썼다.
쓰고 나니 또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일단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
나의 삶은 결국 나의 것이다.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지도 결국 내가 정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기억 속에서 ‘증발되는 시간’이 없도록 살겠다.
그리고 기록할 것이다.
이것 또한 나의 삶.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