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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in Oct 03. 2022

주재원 와이프가 되었다.

주재원 와이프가 되었으면..

내 꿈은 주재원 와이프였다.

회사 다닐 때, 주재원들을 통해서 "주재원 와이프가 최고지"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일까? 아님 유학생활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그것도 아님 퇴사를 꿈꿨던 현실도피의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주재원 와이프가 되어 외국에서 살면서 대학원도 가고 여행도 하고 싶었다.

백수이자 주부가 꿈인 남편은 가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주재원만 가고 나서 그만둬! 쫌만 참아"라고..

내가 이렇게 말할 때마다 남편은 무슨 주재원이냐고, 주재원을 아무나 가냐고, 남편의 직급과 나이에는 절대 못 간다고 하더니 결국 주재원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꿈에 그리던 주재원 와이프가 되었다.

그것도 유럽, 독일의 주재원이 되어 나를 들뜨게 했다.

뭐부터 준비해야 하지? 예민한 4살 딸이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지긋지긋했던 일을 그만둘 수 있다는 행복함, 여행을 실컷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 날 때마다 독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4살 아이가 다닐 유치원에 미리 지원도 하고,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면 어떨지 알아보기도 하고, 어떤 취미활동이 좋을지, 독일에서 뭘 배우는 게 좋을지 알아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뭔가 검색을 할수록 기대감보다는 걱정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주재원 와이프의 삶은 별거 없다는 글과 아이 적응으로 일 년째 힘들어하는 엄마의 이야기, 해외살이의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는 언어에 대한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 영어가 아닌 비영어권의 삶을 생각하지 못했다'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닥쳐왔다. '뭐 언어야 공부하면 어떻게 돼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독일에 가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걱정을 내려놨다. 사실 나도 출국 3일 전까지 일을 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도저히 공부까지 할 시간이 없는 워킹맘이었으니까...


출국일이 다가워 올수록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준비들, 가족, 지인, 친구들과의 송별회까지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주변에서는 모두가 잘된 일이라고 축하해주고, 잘 다녀오라고 이런저런 선물과 돈까지 너무 많은 것들을 챙겨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한다고 주문 케이크도 만들어주고, 한국에서 짐 먼저 보내고 배달음식으로 연명하던 우리를 위해 배민 상품권도 보내주고, 독일 가서 나 자신을 위해 쓰라고 친구들이 모아준 돈과 편지들, 아이 옷, 장난감 등등...

결혼할 때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받은 거 같아 너무 감사했고 이런 좋은 사람들과의 이별이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출국일이 다가왔다

7월 27일... 드디어 나는 독일에 간다. 그리고 주재원 가족의 삶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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