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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Jan 30. 2024

남김없이 먹는다는 건

삶이 내게 준 몫

 벚꽃 피기 전. 갑작스러운 엄마 호출에 아들은 집으로 바삐 향한다.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전화가 처음은 아니다. 아들은 어떤 결심이었는지 여자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엄마에게 말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냥 가야 한다고. 우리는 말 그대로 집에 쳐들어갔다. 아들 여자친구와의 첫 만남이 아픈 남편이 누워있는 방이긴 싫었을 테다. 마지못해 우리를 침대로 안내한다. 앙상하게 마른 손을 꼭 잡고 그에게 내 정체를 밝힌다. 오른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분명 웃었다. 엄마는 나를 껴안으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마지막에 그는 겨우 겨우 팔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웅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폐렴으로 입원했고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파킨슨병은 그 자체로 사망에 이르지 않고 증상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그와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였다.


 주차장에 몇 자리 없네. 구정 전이라 대가족으로 북적인다. 그 사이 벚꽃이 두 번 피고 졌다. 그녀의 눈시울이 납골당 초입부터 붉어진다. 아들은 유골을 뿌리자는 엄마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 눈높이에 딱 맞는 위치에 아빠를 두었다. 연신 눈물을 쏟으면서도 큰 딸이 시집갔으면 좋겠다는 소원도 잊지 않는다. 하늘로 보내는 편지가 곳곳에 붙어있다. 손주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거기서는 두 분 싸우지 마세요. 화요일에 올 수 있음 또 올게요. 방학인데 놀고만 싶어요. 수학은 너무 어려워요. 아직도 아빠 없는 하루가 믿기지 않아. 엄마 저 열심히 살게요. 아들, 아빠야 오늘은 눈이 많이 오네!


 나 들깨 좋아하잖아. 아빠와 인사를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 아들은 엄마가 들깨를 좋아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큰 대접에 나온 들깨 칼국수를 싹싹 비운다. 깍두기도 몇 번을 더 가져다 먹는다. 배부르면 그만 먹으라는 아들의 말을 흘겨 듣는다. 그녀는 마늘, 고추, 쌈장을 넣어 마지막 보쌈 한 점까지 끝낸다. 4인분을 시켜 남을 줄 알았는데. 기우였다. 여긴 또 와도 되겠다. 어딜 데려가도 시큰둥한 그녀의 입에서 나온 최고의 칭찬이다. 나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는 거 처음 봐. 다음에 누나랑 같이 또 오자.


 일요일 아침. 요가원에 간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요가지도자과정을 듣는다. 어제 생일이었던 S가 당근케이크를 락앤락에 담아왔다. E가 입을 뗀다. 저는 입이 짧아요. 조금씩 자주 먹죠. 근데 또 식탐이 있답니다? 먹지도 못할 양을 시켜놓고 맨날 남겨요. 그래 그런 사람들 정말 난감해. 잠시 정적이 흐른다. 내 남자친구가 딱 그렇거든. 익살맞은 H의 표정에 모두 웃음이 터진다. 어떨 땐 정말 화나. 얘는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지? 애초에 음식을 시킬 때 다 먹을 각오를 하고 주문해야지. 걔 때문에 나만 살쪄. 웃음으로 맞장구치며 뚜껑에 묻은 크림을 정성껏 긁어먹는다.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한 마디 던진다. “쌤, 참 책임감 있네요.”


 오후 6시. 요가원으로 데리러 온다는 말에 큰 길가로 나선다. 그를 기다리며 납골당에 붙어 있던 편지를 꺼내본다. 실례인걸 알면서도 사진으로 담았다. 몇 번이고 또 일렁인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 깜빡이를 켠 차가 다가온다. 재빨리 탄다. 아 추워. 오늘 저녁 탕수육에 진짬뽕 어때? 좋지~. 하여튼 국물 참 좋아해. 라면 2개를 구태여 냄비 2개로 나눠 끓인다. 온전히 1개를 다 먹기 위해. 본인이 좀 더 먹으면 어떻냐고 서운해했지만 굴하지 않는다. 면을 다 먹고 냄비받침에 냄비를 기울인다. 국물을 떠먹는다. 바닥이 보인다. 오늘도 내 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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