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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Jan 23. 2024

무소식이 희소식

지나간 겨울

  이따금 네 생각이 난다. 아 물론 보고 싶거나 그립거나 한건 아니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 안녕을 바라는 착한 마음만 있는 건 아니다. 네 불행이 들리지 않아야 나도 편하다. 우리의 마지막은 추접했다. 만난 시간이 무색하게 서로의 앞날에 대한 응원은 없었다. 넌 무응답으로 답했고 나는 모든 잘못을 네 탓으로 쏟아냈다. 나는 도망쳤고 너는 비겁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우리의 끝에 대한 위로일까. 너를 향한 미안함을 덜고 싶기 때문일까.


 너는 일상을 전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잘 사는지 어쩐지 알 길이 없다. 가끔 훔쳐보는 카카오톡 프로필은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다. 찬 바람소리만 지나는 시린 겨울밤, 오랜만에 너를 검색한다. 아기사진이다. 너무 놀란다. 네 얼굴이 많이 담긴 갓 태어난 아이다. 너와 똑 닮은 눈매가 먼저 들어온다. 쌍꺼풀 없이 처지고 깊게 파인 눈꼬리. 너의 얼굴 중 특히 좋아한 선이었다. 이렇게까지 잘 지낼지는 몰랐는데. 핸드폰을 들고 벙찌다 서둘러 그를 친구 목록에서 삭제한다. 혹여나 내가 본걸 들킬까 봐.


 우리는 미래에 대해 자주 그렸다. 그 당시 너의 내일엔 아이는 없었다. 역시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희소식이 반갑지만은 않다. 축하한다고 전할 수도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잘 지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다가도 차마 꺼낼 수 없는 배신감이 올라온다. 한 때 내 세계가 온통 너였기 때문일까. 사진 한 장으로 너의 오늘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 아이가 온 세상인 네가 낯설다.


 갑자기 날이 매섭다. 겨울은 원래 추운 거란 생각으로 버텼는데.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옷깃을 단단히 여민다. 너무 춥다를 속으로 연발하며 집으로 재촉한다. 금세 찬기가 덮이며 녹은 살갗이 간질간질하다. 너와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면, 애꿎은 날씨나 나눴을까. 너의 내일은 어제보다 따뜻했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의 겨울은 지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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