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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Jul 18. 2022

헤어지는 중

 잘 지내고 또 잘 지내길

 그래  헤어졌다야. 1 만에 만난 친구 A 고개를 내두른다. 위로라고 던진 말이였겠지만  내키진 않는다. 완벽한 타인에 의해 부정당한 나의 시간들.  선택은 틀렸어. 나는 그것을  스스로 증명해버렸다.  


 그래서 그렇게 헤어지고는 연락은 없었어? 오랜만에 만난 A는 내게 자극적인 사건들을 듣고 싶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내 생일 즈음 너는 말도 안 되는 일로 문자를 보내왔다. MLB 야구 1년 구독권 정기 결제 취소와 관련해서 내게 미국 본사로 연락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젠 너를 안다. 핑계 삼아 연락할 구실을 찾는 사람이 아니다. 마음 편히 부탁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현실이라니. 비참하다. 측은한 마음도 사랑일까. 깊은 답답함이 빠르게 장문으로 쏟아진다. 마치 네가 아직 내 사람인 것 마냥.


 미용실에서 파마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중 네게 전화가 왔다.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너는 약간 들떠있었다. 우리가 맨날 편의점 생겼으면 좋겠다고 한 그 자리에 진짜 편의점이 들어왔어! 너무 기쁜데, 같이 좋아해 줄 사람이 없어서 너에게 전화했어. 뭐해? 아 그래. 머리 마져해. 때마침 샴푸를 해야 해 자리를 옮겼다. 눈을 가린 채 머리를 감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 너는 그런 사람이었지. 감은 눈으로 네 표정이 어리다 흩어진다. 우리는 아직 헤어지는 중이었다.  


 잠이 오질 않던 밤. 와인 몇 잔에 취해버린 나는 너와 찍었던 사진을 보고 또 본다. 목련나무 앞에서 활짝 핀 너와 나는 봄이었다. 너도 나와 같았나 보다. 때마침 너는 연애 시절 내가 써주었던 연애편지를 찍어 보내온다. 이렇게나 많은 마음을 전했던가. 내가 썼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진심들이 새벽을 후벼 판다.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어. 그 뒤로는 나도 그의 소식은 몰라. 가끔 카카오톡 프로필을 훔쳐보는 정도. 아마 여전히 리버풀의 팬으로 유니폼을 수집하고 야구 시즌이 되면 야구를 보고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풋살을 하러 나가겠지. 고양이와 함께 집에서 야구게임을 하는 게 일상일 거고 싱크대는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을 거야.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 익숙한 뒷모습에 놀란다. 짧게 잘린 뒷머리, 네가 자주 입던 맥코트 그 맥코트만 입으면 신었던 단화까지. 기어코 바쁜 걸음의 어깨를 돌려 네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진다. 충동을 누르며 다시 한번 빤히 바라본다. 자세히 보니 너의 걸음걸이가 아니다. 네가 아니란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내심 아쉬움이 든다. 그의 뒤통수에라도 닿길 바라며 읊조려본다.  잘 지내고 또 잘 지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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