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봄, 유엔제네바사무소(UNOG)의 한국 관련 사료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담당자를 찾았다. 규모가 크고 소장하고 있는 자료가 방대한 기관이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였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UNOG 측에 한국 관련 자료기증을 위해 협업을 해야 했던 인원은 모두 5명이었다. 동아시아기록연구사, 정보관리전문가, 자료관리분류요원, IT 기술요원 그리고 정보관리센터장이다. UNOG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제기구 정보관리 요원들은 저마다 구체적인 직책을 부여받아 정보의 생산과 유통, 사료적 가치가 있는 기록 발굴의 모든 과정에서 고유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조직에 기여하고 있다.
제네바 소재 각 국제기구는 업무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치밀한 기록물 분류 및 시스템 구축이 가능한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들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전문가들은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유용한 정보를 선별하고, 탄탄한 정보관리시스템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빠른 정보전달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나아가 역사, 문화적 가치가 있는 기록은 분야별 전문가의 손을 거쳐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따라서 해당 국제기구의 시책이 바뀌더라도 기록관리체계 자체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조직 내에서 정보관리센터와 기록관리부서만이 제공할 수 있는 순기능일 것이다.
우리 정부는 정부기능분류체계(BRM)의 기록관리 기준표에 의거해 정책분야·영역, 대·중·소기능 및 단위과제로 기록물을 분류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관리전문가의 개입은 부처별 업무내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콘텐츠에 대한 전문성을 전제조건으로 해야 한다. 즉, 외교, 산업통상, 법무, 보건복지 정보관리전문가로서 각 부처의 기능과 업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정보관리 및 기록연구분야 전문성을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각 기관 고유의 전문성까지 요구하는 것은 넘쳐나는 정보·기록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적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무리한 요구가 아닐 것이다.
최근 국방부가 ‘국방 기록관리 전문요원양성’에 관심을 갖고 육군종합행정학교에 ‘육·해·공군 기록관리 전문요원’ 과정을 신설했다. ‘국방정보관리전문가’의 탄생이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정보를 다루는 전문가를 채용하되 해당기관의 전문적인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국제기구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국방부의 노력과 같이 국내 기록관리 전문가양성 프로그램을 보다 정밀하게 정비하고, 각 분야 정보관리 전문가의 업무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할 때다.
성실한 기록은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는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등 찬란한 기록문화를 꽃피워온 수백 년 간의 전통을 가졌음에도, 근·현대사의 부침을 겪으며 기록을 기피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100년 가까이 단절되었던 기록의 전통은 1999년 기록물관리법 제정으로 비로소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됐다. 이처럼 기록이 곧 문화유산이라는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분야별 정보관리전문가를 양성하고, 현실적인 기록관리 체계를 마련하여 우리가 지켜야 할 명예, ‘기록의 나라’로서의 명성을 되찾기를 희망해 본다.
출처 : 법조신문 https://news.koreanbar.or.kr/news/articleView.html?idxno=17125
위 글은 2017년 10월 법조신문의 제네바 통신란에 기고했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