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죽음을 애도하며
'우울증 투병기'로 유명해진, 한 때 그 제목이 하나의 '밈'이 되기도 했던, 한 작가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그 소식을 나의 이웃 블로그에서 접했다. 'ㅇㅇㅇ작가극단적선택'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클릭. 이제는 원로격인, 과거의 유명 개그맨이 운명을 달리했다. TV에서 그를 보고 자란 나의 부모님은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조차 처음 들었던 나는 그가 남긴 마지막 소식으로 그를 알게되었다. 클릭.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혹해 캄보디아까지 날아간 수많은 우리나라 청년들이 납치 및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는 명을 달리한 이도 있다. 클릭.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혹은 병마와 싸우다가 죽음을 겪고 있다. 인터넷으로 신문 사설을 주로 읽는 나는, 어쩔 수 없이 하단에 있는 부고란에도 눈길이 간다. 클릭.
나는 오늘도 어떤 죽음을 한 번의 클릭으로 소비한다. 어떤 죽음은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조회수'의 수단이기도,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 줄의 뉴스 기사이기도 하다. 손이 채 닿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죽음이기 때문일까, 혹은 각자가 살아있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벅차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모든 죽음은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마주할 만큼 가까이 있다. 그러다보니 나는 그 죽음들을 다소 가볍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죽음은 가볍지 않다. 처음부터 죽음을 각오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 모두에게는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힘껏 주변을 향해 손을 뻗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고자 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을 둘러싼 어떤 이유들에게 끝내 패했을 뿐이다. 나는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을 그 모든 시간들을 기리고싶다.
가슴 한 켠이 아려지는, 그 모든 죽음을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