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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파랑 Mar 12. 2023

바닷속 생명체들에 마음을 뺏기다

두 번의 필리핀 펀다이빙에서 얻은 것

 다시 다음해 설연휴, 친구 바걍이 먼저 다이빙하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러고 보니 가장 가까운 동남아를 가보지 않았다. 동남아에는 자신만의 특성을 가진 유명한 다이빙포인트가 많은데 말이다. 오랜 고민과 검색 끝에 거북이를 만날 수 있는 필리핀 보홀로 정했다. 


 첫날은 개인적으로 예약한 호텔에서 숙박하고 이튿날 다이빙 업체가 우리를 픽업 후 다이빙을 진행하고 숙소까지 연계에서 이용하기로 했다. 픽업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업체에서 오지 않는다. 시간 약속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짐에 따라 짜증과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업체 직원에게 온 화를 담아 매섭게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나의 안전을 책임질 분인데 아차 싶어서 민망함과 당황스러움을 감추느라 분주하다. 거기다 차를 타고 돌아 돌아 도착한 업체는 우리가 묵었던 호텔의 해변을 통해 걸어가면 바로 옆집이었다는 것이다. 와~ 그때의 허무함이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감정 소모가 있었다. 피곤하다.


  시작은 이렇게 삐끗했지만(물론 이 삐끗은 나만 느끼는 감정이다. 함께 있었던 바걍은 평온하게 기다리고 늦을 수도 있는 거라며 이해했다. 물론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 맞지만 피치 못할 사정에 대해 미리 헤아려주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과를 받아주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인간미 없이 효율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성격은 여전하다.) 다행히 3일간의 다이빙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이끌어 주시는 다이빙 강사님 성격도 매우 밝고 유쾌했으며 사진도 많이 찍어 주셨다. 지난번 팔라우에서의 펀다이빙에서 사진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컸던지라 이번 보홀에서는 다이버로서의 우리의 모습을 잘 남겨줄 수 있는지가 업체를 선정하는데 중요한 조건이었다. 캐릭터 후드를 건네시며 온갖 낯간지러운 포즈로 귀여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주셨고, 함께 하는 그룹 내 모든 다이버들이 섭섭하지 않도록 신경 써가며 잘 챙겨주셨다. 덕분에 즐겁고 안전하게 다이빙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거북이를 원 없이 봤다. 밥먹는 모습, 잠자는 모습도 모두모두 귀여운 거북이랑 함께 수영하는 기분이란, 해봐야 알 수 있다.



  다음 해에 다시 필리핀을 찾았는데 이번에는 아닐라오라는 지역이다. 7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열대 기후의 필리핀은 다이빙 포인트들이 잘 개발되어 있다. 지역별로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이 다이버들을 유혹한다. 특히 아닐라오는 마크로 다이빙으로 유명한데, 마크로 다이빙이란 마크로 렌즈로 사용해야 보일만큼 아주 작은 생물들을 만나는 다이빙을 말한다. 


 사실 장소 결정할 때는 기간과 시기를 고려하여 다시 필리핀을 가기로 한 후 지난해에는 세부로 들어갔으니 이번엔 마닐라로 들어가는 포인트를 가보자는 마음으로 대충 정했는데 여기서 만난 귀엽고 조그마한 생명체들을 나는 몹시도 애정하게 되었다. 유화물감으로 그린 듯 알록달록한 색감을 선명하게 내뿜는 누디브런치들은 내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 예쁜 생명체들을 내 손으로 직접 찍어 나의 사진첩에 간직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지만 어설프게나마 로그북에 그림으로 대신하며 마음을 달랬다. 다시 들춰 본 로그북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음… 뭔가 많이, 아주 많이 아쉽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다른 이들이 찍어 인터넷에 공유해 준 사진들 보는 것도 충분히 기쁘다. 정말 신비롭다.



 연례행사가 될 것 같았던 설연휴 펀다이빙은 바걍의 퇴사, 가족 문제 등등의 이유로 지속되지 못했고 어쩌다 보니 이후로 스쿠버다이빙 자체를 4년 넘게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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