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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파랑 Jan 15. 2023

스물여덟에 처음 배우는 수영

19년간 제주에서 사는 동안엔 뭐 하고

 의식주를 스스로 책임지는 어른이 되면 배워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스쿠버다이빙이었는데 ‘그랑블루’라는 스쿠버다이빙 여행 에세이를 읽고 나서 그 욕망이 급속도로 강해졌다. 깊은 바닷속 생물들을 같은 공간에서 헤엄치며 만날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자격증 취득을 염두에 두고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에 문득 내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하하하하…).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위해서(심지어 자격증 취득 시에도) 반드시 수영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물속에서의 신체적 안전과 심리적 안정을 위해 먼저 수영을 배우기로 한다.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주에서 살았던 나는 10여 년 동안 수없이 에메랄드빛 바다의 해수욕장을 드나들고 방과 후의 시간을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보냈지만 정작 수영은 할 줄 몰라서 서른을 앞둔 나이에 처음 배워보고자 하는 것이다.


 실내수영장 강습 첫날, 유아용 풀에서 벽 잡고 발차기를 하고 음파음파를 하고 있노라니 웃음이 났다. 그렇지만 이후 금세 진도가 나가 성인용 풀에서 자유롭게 자유형으로 떠다닐 때까지는 평온했다. 문제는 배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이다. 머리가 물에 잠겨 코와 귀로 물이 들어가 허우적거린 경험을 한 번 하고 나니 갑자기 물이 무서워졌는지 물에 뜨지 못하기 시작했다. 온갖 소음은 들려오는데 정작 시야에는 높디높은 수영장 천장만 들어오는 것이 겁이 났던 것일까? 나와 같이 강습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빠르게 배워 다음 단계 클래스로 넘어가 있다. 남다른 체력과 근육량을 가지고 있고 도구를 사용하는 운동은 잘 못하지만 맨몸으로 하는 운동은 자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남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현실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된 일인지 재미있었기에 멈추지 않고 강습에 참여했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찌어찌 배영을 마스터하고 다음 단계 클래스로 넘어가 평영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 또한 만만치 않다. 나는 가르쳐준 대로 따라 한다고 생각했으나 내 다리는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팔과 다리와 머리의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엉망진창이라 스스로를 박치인가? 몸치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이다. 역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지지 않고 꾸준히 강습에 참여한다. 급기야 너무 오래 봐서 친해져 버린 강사가 참 못하는데 참 열심히 나온다고  놀려대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평영을 마스터했는지 기억이 없지만 어쨌든 접영을 배우기 시작한다. 풉! 그동안의 영법들은 장난이었다. 이건 뭐 총체적 난국이다. 에너지소모는 엄청나서 살도 빠지고 잠도 잘 자고 건강해졌지만 끝내 나는 접영을 마스터하지 못했다. 접영을 마스터하고 옆라인에서 오리발 신고 차례차례 줄지어 사람인지 물고기인지 모를 정도로 평화롭게 수영하시는 분들 사이에 끼고 싶었지만 나에게 그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10개월간의 강습이 끝났다.


 이후에 사람들과 어쩌다 수영강습 경험을 얘기하게 되어 10개월간 배웠다고 하면 오래 배웠다며 다들 엄청 잘하겠다고 놀라지만 접영 배우다 말았다고 하면 더욱 놀랜다. 나도 내가 놀랍다. 그렇게 못할 줄이야.


 하지만 이 웃픈 수영강습을 통해 혹시나 물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내 몸 하나는 스스로 건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물에 대한 두려움에 맞설 자신이 생겼다. 이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자, 이제 스쿠버다이빙을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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