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병아리 인사이트]

by 어금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박물학자인 크레이그 포스터가 남아프리카의 바다를 헤엄치다 문어를 만나게 된다. 조개껍데기와 해초들로 온몸을 무장한 뭉텅이. 순식간에 껍데기들을 다 버리고 빠르게 바닷속을 헤엄쳐 간다.


첫 만남 이후 크레이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문어에게 다가간다. 하루하루, 천천히.

드디어 경계를 풀어준 문어를 실수로 놀라게 해 버려 한동안 문어를 다시 찾아 헤매기도 한다.


그때의 절망감이 이해된다. 겨우겨우 얻은 기회가 찰나의 실수로 날아가 버린 듯한 것. 살면서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이다. 놀라게 한 죄책감과 미안함,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자책, 물거품 같은 상황에 대한 절망감.

그래도 크레이그는 다시 한번, 차근차근 다시 문어에게 다가간다. 문어는 그 일을 다 잊은 듯, 그를 받아준다.


천적인 상어로부터 공격받아 다리를 하나 잃은 문어가 안쓰러우면서도 자연의 세계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순리라며, 그저 지켜봐야만 했던 크레이그.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잠도 이루지 못하는 크레이그를 안심시켜주기라도 하려는 듯, 문어는 서서히 다리를 회복한다.


잘려나간 다리와 그 다리를 씹어먹는 상어를 봤을 땐 내 마음까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약육강식과 먹이사슬의 세계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크레이그 못지않게 문어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에게는 문어의 아픔이 나의 아픔과 같이 느껴졌다. 매일 직접 문어를 만나 교감하던 크레이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회복한 다리로 물고기들과 장난도 치고, 게 사냥도 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문어와 크레이그.

어느새 두 동물이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 온다.


천적은 여전히 건재했고, 문어는 다시 한번 상어와 추격전을 벌인다. 갑자기 분주한 문어의 움직임, 이후 본 광경은 일 년 전의 첫 만남과 같았다. 조개껍데기로 온몸을 꽁꽁 싸맨 모습. 아, 그 모습이 이런 치열한 모습이었구나. 마치 영화에서 떡밥을 회수하고, 장면의 의미를 완성시켜 주는 것처럼, 하나의 거대한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짜릿함과 경이로움이었다.


기지를 발휘해 평화를 되찾은 문어였지만, 이내 문어와의 이별이 점차 다가온다. 짝짓기를 하는 문어는 여유롭고 느긋했다. 알을 낳은 후에는 더더욱 굴에서 나오지 않으며 천천히, 죽어갔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은 그 어느 동물에게서 만나봐도 웅장하고 가슴 먹먹하다. 그렇게 문어는 힘을 다하고, 물고기와 상어의 먹이가 되어 바닷속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크레이그.


일 년 동안 온통 그의 머릿속과 행동을 지배한 문어와 이별을 했음에도 그에겐 슬픔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문어를 만나, 문어와 함께하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 야생동물 하나하나의 가치와 소중함을 깊이 있게 느꼈다. 이 거대한 공간에서 나 자신의 유약함과 연약함,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이 자연과 함께이고, 그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문어는 떠나갔지만, 언제나 문어는 그 자리에 있다.

크레이그는 오늘도 아들과,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문어의 존재를 느끼며 또 다른 생물들을 만나며 보호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보는 내내 놀라운 바닷속 모습에 감탄하고, 인간과 문어의 교감에 덩달아 가슴이 촉촉해졌다. 나 역시 자연 속에 함께하며 자연을 느끼고, 웅장함에 압도되고, 신비한 경험을 누리고 싶다.

떠나고 싶어졌다, 바다로. 알고 싶어졌다, 자연이.

한때 다큐멘터리 피디가 꿈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카메라 성능과 화질, 아름다운 구도에 심각하게 감탄하기도 하며. 앞으로 자연 다큐멘터리를 더 많이 보고 싶게 만드는 다큐멘터리 었다.

작가의 이전글다스리기